항목 ID | GC02206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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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鯉山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산7-8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안성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12월 21일 - 창원 이산성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5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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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창원 이산성지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창원 이산성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산7-8임 |
성격 | 산성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에 있는 테뫼식 토축 산성 터.
[개설]
창원 이산성지는 정식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없으므로 정확한 축조 시기나 목적이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경남 대학교에서 제작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서 변한의 소규모 정치 세력이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1981년 12월 2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변천]
이산 산성은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목적을 알 수 없지만, 산성의 위치나 형태, 출토 유물 등으로 대략의 축조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산성의 북쪽과 동쪽은 광려천의 지천인 어린천이 곡류하여 마산만으로 유입되는데, 이는 자연 하천을 해자로 이용하여 방어력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산 산성은 동쪽이나 북쪽 및 마산만에서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산 산성은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삼국 시대의 일반적인 산성과 유사하다. 하지만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으로 동쪽을 제외하면 좁고 긴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으므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하다. 이러한 양상은 신라가 축조한 것이 확실한 진해 구산성과 차이를 보인다. 이산 산성과 같이 내부 공간이 협소한 산성으로는 대산 산성·인곡 산성·당마 산성 등이 있는데 모두 가야의 제소국이 축성한 산성들이다. 따라서 이산 산성 역시 가야의 제소국 중 한 곳이 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산성 주변의 지표에서 가야 토기로 보이는 회청색 경질 토기와 적갈색 연질 토기편들이 채집되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산 산성은 가야 시대의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지만 폐성된 시기는 알 수 없다.
[위치]
이산 산성은 마산 MBC 서쪽에 있는 반월산의 정상부와 7부 능선을 두르는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옛 마산 시가지의 중심에 있으며, 남쪽으로 마산만과 마산 시가지, 북동쪽으로 마산과 창원을 잇는 교통로, 북서쪽으로 함안과 마산을 잇는 교통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북쪽과 동쪽에서는 광려천의 지천인 어린천이 곡류하여 마산만으로 유입된다.
[현황]
이산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에 가깝다. 능선이 이어지는 남동쪽으로 제외하면 급경사를 이루지만 동벽의 정확한 진행 방향은 알 수 없다. 산성의 규모는 450m 정도로 소형이며, 성벽은 좁고 긴 능선을 따라서 쌓았다. 성벽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방식을 알 수 없으나 토성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성벽의 기저부에 기단을 할석[깬 돌]으로 보강한 흔적이 있으나 초축 당시에 설치된 것인지 수축이 이루어지면서 설치된 것인지 단언하기 힘들다.
이산 산성의 내부 동쪽은 체육 시설로 인해 훼손이 심하지만, 체육 시설 사이에서 암반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체육 시설이 들어선 지역을 제외하면 산성이 축조될 당시의 지형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 및 동쪽은 수풀이 우거져 부속 시설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비교적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 있어 건물지나 집수지와 같은 시설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산 산성은 정확한 초축 시기와 변화 양상을 알 수 없지만, 현재 확인되는 특징으로 보아 가야의 산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야 산성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