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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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山文集 |
이칭/별칭 | 인산집,인산선생문집 |
분야 | 구비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간행 시기/일시 | 1940년 - 『인산문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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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집 |
저자 | 오세로 |
편자 | 오석목 |
간행자 | 오승각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세로 19㎝|가로 14.5㎝ |
어미 | 상향 이엽 화문 어미 |
권수제 | 인산선생문집(仁山先生文集) |
판심제 | 인산선생문집(仁山先生文集) |
[정의]
근대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오세로의 문집.
[개설]
『인산문집(仁山文集)』은 청송 출신의 유생이며,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장이었던 인산(仁山) 오세로(吳世魯)[1852~1900]의 문집이다.
[저자]
오세로의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성국(聖國)이며, 호는 인산(仁山)이다. 9세에 나은(蘿隱) 심계(沈銈)와 소은(小隱) 유치구(柳致球)의 문하에서 백가제서(百家諸書)를 널리 읽었으며, 관직은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다.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의 참모장에 임명되어 「8조도(八條圖)」를 작성하여 의병진을 편성하고, 편제에 따른 총포(銃砲)의 수와 포수의 일료(日料) 산정 등에 대해 상영(上營)에 보고함으로써 의병진을 편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감은리전투에 출정하였으며, 5월 14일부터 5월 16일까지 진중일기(陣中日記)의 기록을 담당하여 상세한 전투 상황을 남겼다. 청송의진이 해산된 후에 청나라 연호(年號)를 사용하고 청나라에 청병(請兵)하여 일본 세력을 물리치는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청송의진 해산 후 은거하다가 1900년 1월 19일 별세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인산문집(仁山文集)』은 오세로의 장남 오석목(吳錫穆)이 그 선친이 남긴 글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편집한 후 1918년 심능훈(沈能勳), 심의식(沈宜植), 허익(許謚)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간직했던 것을 1940년경 그 손자 오승각(吳承恪)이 김한식(金翰植)의 발문(跋文)을 받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필사본(筆寫本)이다. 행자는 10행 20자, 크기는 가로 14.5㎝ 세로 19㎝,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본집은 2권 1책이다. 제1권은 만시(挽詩)를 포함해 시(詩) 140수, 서(書) 27편, 계(戒) 1편, 병신년(丙申年) 팔조도(八條圖)와 일기(日記), 인계냉담(仁溪冷談), 학설(學說), 청송향약서(靑松鄕約敍), 인산초당실기(仁山草堂實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권은 제문 등과 행장(行狀), 묘표(墓表), 발(跋), 유사(遺事)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주목되는 것이 병신년(丙申年) 팔조도와 일기이다. 청송의진의 참모에 임명된 오세로가 팔조도를 작성하여 의병진을 편성하고, 편제에 따른 총포(銃砲)의 수와 포수의 일료(日料) 산정 등을 상영(上營)에 보고하고 있는데, 의병진을 편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1842~1915]에 올린 편지 1편과 유인석의 문인 서석기(徐錫琦)에게 보낸 편지 2편인데, 이 편지로 보아 화서학파(華西學派)와 깊은 관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청송의진을 해산할 즈음 청나라 연호(年號)를 사용하고 청나라에 청병(請兵)하여 일본 세력을 물리치는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유인석과 서석기와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청송 지역의 학풍과 의병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