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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34
한자 沈德符
영어음역 Sim Deokbu
이칭/별칭 득지(得之),노당(盧堂),허강(虛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청송
성별
생년 1328년연표보기
몰년 1401년연표보기
본관 청송
대표관직 문하좌시중|판문하부사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盧堂) 또는 허강(虛江). 할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 심연(沈淵)이며, 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다. 아들이 일곱 명으로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심온(沈溫)·심종(沈淙)·심정이다. 이 중 심온(沈溫)세종의 국구가 되었으며, 심종(沈淙)태조의 부마가 되었다.

[활동사항]

고려 1332년 충숙왕 복위년 말에 부모의 음덕으로 사온직장동정(司醞直長同正)에서 좌우위녹사(左右衛錄事)를 거쳐 1364년(공민왕 13) 수원부(水原府)의 수령이 되었다. 공민왕 말년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를 거쳐 1375년(우왕 1)에는 우상시(右常寺)에 이어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승직되었다. 이후 밀직부사(密直副使),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와 강계도만호(江界都萬戶), 의주부원수(義州副元帥), 서해도원수(西海道元帥) 등의 요직을 거쳤다.

1378년(우왕 4)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서 서해도원수를 겸하여 여러 차례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특히 1380년(우왕 6) 도원수 나세(羅世)와 함께 최무선(崔茂宣)이 만든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385년(우왕 11) 문하찬성사로서 동북면상원수를 겸하여 북청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는 등 이성계와 함께 동북면에 침구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같은 해 겨울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에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388년(우왕 14)에 서경도원수로서 조민수와 함께 좌군에 속하여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도왔으며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와 더불어 창왕 폐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공양왕 즉위 직후에는 문하좌시중·경기좌우도·평양도통사에 올랐다. 이듬해에 청성군충의백(靑城君忠義伯)에 봉해졌으나 무고로 인하여 황해도 토산현에 일시 유배되었다.

1391년(공양왕 3) 문하좌시중에 복직되어 왕세자 왕석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판문하부사로 조선의 개국을 맞아 1393년(태조 2)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1394년(태조 3)에는 신도궁궐조성도감의 판사가 되어 한양의 궁실과 종묘를 영건하는 일을 총괄하였다. 1397년(태조 6)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년(정종 1)에는 좌의정이 되었다. 이듬해에 사직했으나 병으로 죽으니 나이 74세였다.

[상훈과 추모]

처음 시호를 공정(恭靖)이라 했으나 뒤에 정안(定安)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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