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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071
한자 崔潾
영어음역 Choe Ri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충주목사
출신지 미상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강화
대표관직 사간원대사간

[정의]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강화(江華). 증조할아버지는 최세창(崔世昌), 할아버지는 최복해(崔福海), 아버지는 최연년(崔延年)이다. 처는 유계손(柳季孫)의 딸이고, 형제로는 형 최순(崔淳)이 있다.

[활동사항]

최린(崔潾)은 1478년(성종 9)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예문관봉교, 주서, 사간원헌납을 거쳐 1503년(연산군 9) 충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충주목사로 있을 때 객사가 헐어서 손님 접대에 곤란하였으므로 판관 이윤중(李允中)과 뜻을 모아 청연당(淸燕堂)을 건립하였다. 청연당 건립 시 백성을 크게 동원하지 않고 6~7명으로 4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에 공사를 끝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홍귀달은 『청연당기(淸燕堂記)』에서 “중원(충청도 일대)은 산수의 뿌리이니 천지의 맑은 기운이 이곳에 모여 있다. 관사를 새로 지었으니 이에 천지의 맑은 기운이 산수에 붙어 있다가 휘황한 누각의 처마와 기둥 사이로 옮겨졌다. 여기에서 연회를 열거나 조용히 휴식할 수 있고 업무를 정리할 수도 있으니 청연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여 청연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최린을 칭찬하였다.

1504년에는 사간원대사간으로 연산군에게 간언하다 곤장을 맞고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이후 형조참의, 병조참의를 거쳐 1555년(명종 10) 진도군수 재임 중 을묘왜변을 맞아 성을 버리고 도망한 죄로 처벌을 받고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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