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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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文起 |
영어공식명칭 | Kim Mungi |
이칭/별칭 | 김효기(金孝起),여공(汝恭),백촌(白村),충의공(忠毅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금회영각에 영정이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김광저(金光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판서를 지낸 김순(金順)이다. 아버지는 호분시위사 좌령 사직(虎賁侍衛司左領司直)을 지낸 김관(金觀)이고, 어머니는 옥천 육씨(沃川陸氏)이다. 부인은 이조 판서를 지낸 김효정(金孝貞)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문기(金文起)[1399~1456]는 1399년(정종 1) 충청도 옥천군 사단동(社壇洞)[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출생하였다. 1426년(세종 8)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30년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1436년 사간원 좌헌납(司諫院左獻納)을 거쳐 1439년(세종 21) 경상도 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였다. 재임 중 금호강이 바라보이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일대 언덕에서 소요(逍遙)하였다고 한다. 1445년(세종 27) 함길도 도진무(咸吉道都鎭撫), 1448년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 1450년 병조 참의, 1451년(문종 1) 함길도 관찰사, 1453년(단종 1) 형조 참판, 1455년(세조 1) 공조 판서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일으킨 단종(端宗)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고를 엮은 6권 3책의 『백촌 선생 실기(白村先生實記)』가 전한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 역사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31년(영조 7) 복관(復官)되었으며, 1778년(정조 2)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됨과 동시에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1년 단종의 무덤인 장릉(長陵) 충신단(忠臣壇)에 배식(配食)되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의 섬계 서원(剡溪書院), 전라북도 익산시 석암동의 오강 서원(五岡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의 효암 서원(孝巖書院),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의 덕양 서원(德陽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 김문기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금회영각(琴回影閣)이 건립되어 있다. 봉안된 영정은 1451년 김문기가 함길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명나라 화사(畵師) 공손급(公孫汲)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금회영각은 1900년(고종 37) 김문기의 후손과 달성군 일대에 세거하고 있는 김녕 김씨(金寧金氏) 일족이 의논하여, 김문기가 대구에서 소요하던 금호강 인근에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