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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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昌敍 |
영어공식명칭 | Park Changseo |
이칭/별칭 | 양숙(良叔),조암(釣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달성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양숙(良叔), 호는 조암(釣庵).
[활동 사항]
박창서(朴昌敍)[1584~1646]는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뛰어났다고 한다. 1618년(광해군 1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풍기 현감(豊基縣監)으로 재임하던 시절 어진 정사를 베풀었다. 이때 조정에 정책의 시정(是正)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중신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벼슬에서 물러난 이후 청도군 녹동(鹿洞)[현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와 수양에 힘썼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조암집(釣庵集)』이 전한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