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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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詠道 |
영어공식명칭 | Lee Yeoung Do |
이칭/별칭 | 성여(聖與),동암(東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현풍 현감을 역임한 문신.
[개설]
이영도(李詠道)[1559~1637]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손자로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었다. 1598년(선조 31) 현풍 현감으로 부임하여 치적이 뛰어나서 표리(表裏)[옷의 겉감과 안집]를 하사받았으며, 이후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여(聖與), 호는 동암(東巖). 할아버지는 퇴계 이황이고, 아버지는 군기시 첨정 이준(李寯)이며, 어머니는 훈도 금신(琴梓)의 딸이다. 부인은 충정공 권벌의 손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이영도는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는 일]로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거쳐 제용감 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안동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 이듬해 연원도 찰방으로 나가 전쟁의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호하고 군량미를 조달하여 명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1594년(선조 27) 충청도 판관을 겸직, 피난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전란 중에도 수만 석의 양곡을 생산하였다. 1596년(선조 29) 좌천당하였다가 유성룡(柳成龍)의 상소로 복직된 뒤, 원병(援兵)으로 온 명나라 군사를 따라 많은 군량미를 조달·수송하여, 그 공으로 1597년(선조 30) 호조 좌랑이 되고 다시 호조 정랑이 되어 남정양향사(南征糧餉使)로 상을 받았다.
1600년(선조 33) 현풍 현감이 되어 치적이 뛰어나서 표리(表裏)[임금이 신하에게 내리거나 신하가 임금에게 바치던 옷의 겉감과 안감]를 하사받았다. 현풍 현감 재직 시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던 향교를 중건하고 관인을 다시 주조하였다. 1603년(선조 36) 김제 군수로 승진하고, 1606년(선조 39) 청송 부사에 임명되었다. 광해군(光海君) 때에는 사복시 첨정, ·군기시 부정, 영천 군수를 지냈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익산 군수를 거쳐 선공감 첨정(繕工監僉正)·내섬시 정(內贍寺正)·원주 목사를 역임하고, 1636년(인조 14) 군기감 정(軍器監正)에 올랐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7)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록되었으며, 1813년(순조 13) 5월 27일 좌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