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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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源朝 |
영어공식명칭 | I Wonjo |
이칭/별칭 | 여천(黎泉),임목아(林木兒)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덕제 |
출생 시기/일시 | 1909년 - 이원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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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이원조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전영사(餞迎辭)」 입선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이원조 『조선중앙일보』에 「신춘당선문예 문학개평」 발표 |
수학 시기/일시 | 1932년 - 이원조 니혼 대학 전문부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이원조 『조선일보』에 「시에 나타난 로맨티시즘에 대하여」 발표 |
수학 시기/일시 | 1935년 - 이원조 일본 도쿄 호세이 대학[法政大學] 불어불문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1939년 - 이원조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이원조 조선문학건설본부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이원조 조선문학가동맹 서기장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이원조 월북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이원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 부부장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55년 - 이원조 사망 |
학교|수학지 | 교남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학교|수학지 | 니혼 대학 - 일본 |
학교|수학지 | 호세이 대학 - 일본 |
활동지 | 『조선일보』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조선문학건설본부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조선문학가동맹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 북한 |
성격 | 문학평론가|언론인 |
성별 | 남성 |
본관 | 진성 |
대표 경력 | 조선문학가동맹 서기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수학한 문학평론가.
[개설]
이원조(李源朝)[1909~1955]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대구교남학교에서 수학한 문학가이다. 1932년 일본대학 전문부를 졸업하고 1935년에 일본 도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해방공간에서 문학평론활동을 한 문학평론가이다.
[활동 사항]
이원조는 192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전영사(餞迎辭)」가 입선되었고, 1932년 조선중앙일보에 「신춘당선문예 문학개평」, 1933년 조선일보에 「시에 나타난 로맨티시즘에 대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이원조의 평론활동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집중된다. 이 시기에 임화, 김남천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결성하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초대 서기장을 맡았는데, 이원조의 평론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변혁을 주장하는 프로문학의 경향을 띠었다. 특히 해방기에 내세운 이원조의 평론은 마르크스주의 문학에 입각한 ‘인민적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이었다.
[저술 및 작품]
「자살론」[『동아일보』, 1931. 1.], 「신춘문예 문학개평」, 「지드론」, 8·15해방 후에 「조선문학의 당면과제」[『중앙신문』, 1945. 11. 6.~13.], 「조선문학비평에 관한 보고」[전국문학자대회보고연설, 1946. 2. 8.~9.], 「민족문화발전의 개관」[민고, 1946. 5.]」, 「민족문화건설과 유산계승에 관하여」[문학, 1946. 7.]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