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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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津筆耕舍 |
영어공식명칭 | Pilgyeongsa |
이칭/별칭 | 필경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구자경 |
건립 시기/일시 | 1934년 - 당진필경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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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6년 6월 - 당진필경사 마루, 방, 부엌, 마당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3년 - 당진필경사 기와 지붕으로 변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당진필경사 내부 구조물 복원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당진필경사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2년 12월 - 당진필경사 완전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2월 23일 - 당진필경사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당진필경사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당진필경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12] |
원소재지 | 당진필경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12] |
성격 | 주택 |
양식 | 초가지붕의 '一' 자형 목조 건축물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당진시 |
관리자 | 당진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심훈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34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직접 설계하고 지은 주택.
[개설]
심훈(沈熏)[1901~1936]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2년 서울에서 부모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왔다. 당진에 내려온 심훈은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1934년 장편 소설 『직녀성(織女星)』을 조선 중앙 일보에 연재하고 그 원고료를 받아 손수 설계하고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하였다. 심훈은 당진필경사에 살면서 둘째 아들 심재광과 셋째 아들 심재호를 낳았고, 1935년 5월 4일 기고한 장편 소설 『상록수』를 53일 만에 탈고해 동아 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소설 현상 공모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명칭 유래]
택호 ‘필경사’는 1930년 발표한 심훈의 시 「필경(筆耕)」에서 비롯한 것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 일구듯 표현하고자 하는 심훈의 의지를 담아 '원고지에 농사 짓는 집'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필경(筆耕)〉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耕]며 나간다.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요, 유일(唯一)한 연장이다.
거칠은 산(山)기슭에 한 이랑[畝]의 화전(火田)을 일려면
돌뿌리와 나무 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었던고?
[이하 생략]
[위치]
당진필경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12]에 있다. 동남향으로 자리 잡아 집 앞으로 넓은 들이, 동북쪽으로는 서해가 인접해 있다. 당진필경사 마당 앞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이장한 심훈의 묘소와 상록수 문화관, 심훈 기념관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변천]
당진필경사에는 심훈이 사망한 이듬해부터 인근에 살던 김태룡 장로 가족이 살다가 한국 전쟁 후에는 피난민 황보은도가 살았는데, 1951년 권유희[심훈의 둘째 형인 목사 심명섭의 부인]가 추진해 이용남, 황보은도, 강도원, 이해용 등이 처음으로 당진필경사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기도처가 설립되었다. 이후 1972년까지 14대 담임 전도사가 파견되면서 당진필경사는 상록수 교회[부곡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1954년 당진필경사는 부곡 감리교회에 매매되었다가 1970년 심훈의 맏조카 심재영이 당진필경사를 다시 매입하였고, 이후 당진시에 희사하여 현재 당진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형태]
당진필경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어서 외관으로 보면 전통적인 '一' 자형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으나 일본식 도시 주택의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다. 주택 전면을 바라보고 우측에서 2번째 간을 현관으로 하고 현관을 들어서면 우측에 전후 2칸을 터서 큰 방을 만들어 이 방을 집필실로 사용하였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좌측으로는 횡으로 2칸 반을 터서 마루방을 두었다. 마루방 뒤편 한쪽은 안방이고 다른 한쪽은 현관 뒤쪽 한 칸과 합쳐 부엌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2칸의 부엌 중 한 칸은 상부에 다락을 두고 안방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 다락은 마루방과도 통하도록 문을 내었다. 주택의 좌측에는 앞뒤로 길게 반 칸을 나누어 화장실과 욕실을 배치하였는데 화장실과 욕실은 안방을 통해 드나들도록 하였다. 욕실에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을 걸고 밑에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아궁이를 만들었다. 당진필경사의 전면과 측면에는 유리창을 달아 채광을 좋게 하였고, 마루방과 집필실 창문 바로 아래에 작은 목조 베란다를 만들어 화분 등을 올려놓을 수 있게 하는 섬세함도 보인다. 현재 당진필경사 내부에는 심훈이 읽었던 책, 등잔, 이불과 옷가지, 부엌살림 일부와 아궁이, 욕조 등이 재연되어 있다.
[현황]
당진필경사는 1997년 12월 23일 충정남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정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어 당진시에서 상록수 문화관, 심훈 기념관과 함께 보존·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필경사는 심훈이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와 작품 창작에 전념하던 중에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일대에서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하고 있던 맏조카 심재영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에서 농촌 교육에 헌신하다 과로로 숨진 최용신을 모델로 하여 쓴 일제 강점기 농촌 계몽 소설의 대표작 『상록수』를 탈고한 심훈 문학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