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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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藝 |
영어공식명칭 | Gu Y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활동 시기/일시 | 1317년 - 구예 구재삭시 장원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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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구예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
사당|배향지 | 신암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526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능성(綾城) |
대표 관직 |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개설]
구예(具藝)[?~?]는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으로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구예가 사망하자 부인이 구예의 묘소를 송악읍 가교리에 조성하고 신암사(申庵寺)를 세워 위패를 봉안하였다.
[가계]
구예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구연(綾珚)의 일곱째 아들이다. 부인은 도염서 령(都染署令) 신진승(申晉升)의 딸 아주 신씨(鵝洲申氏)이다.
[활동 사항]
구예는 1317년(충숙왕 17) 구재삭시(九齋朔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중대광 판전의시사(重大匡判典儀寺事)에 이르렀으며, 면주(沔州)[면천]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면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능성 구씨는 이때부터 송악읍 가교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전설에 의하면, 구예가 원나라로 가는 길에 어느 부부의 목숨을 구했는데 이들이 나중에 구예의 묘소를 현재의 장소에 정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구예가 사망하자 부인인 아주 신씨가 구예의 묘소를 미리 정해 둔 송악읍 가교리 신암산에 조성하였다. 그리고 묘소 옆에 신암사를 짓고 인도에서 금동 불상을 들여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전한다. 현재 신암사에는 구예와 아주 신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묘소]
구예의 묘소는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