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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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耆淵 |
영어공식명칭 | Gim Giyeon |
이칭/별칭 | 경년(景年),우송(又松),우송 처사(又松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827년 - 김기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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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81년 - 김기연 사망 |
출생지 | 김기연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연안(延安)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개설]
김기연(金耆淵)[1827~1882]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문이 깊었으나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우송 처사(又松處士)라 불렸다.
[가계]
김기연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년(景年), 호는 우송(又松)이다.
[활동 사항]
김기연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김기연이 일곱살 때 어머니가 유종(乳腫)으로 고생하며 모든 약이 효과가 없었다. 이때 의원이 말하길, 어린이가 입으로 빨아 내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기연은 의원의 말대로 어머니 유종을 입으로 빨아냈고, 어머니는 10여 일 만에 치료되었다. 그 후 아버지의 왼쪽 다리에 큰 종기가 나서 4개월간 고통을 겪게 되자 김기연은 6일간이나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내 낫게 하였다. 훗날 환갑을 넘긴 어머니가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자 김기연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칼로 베어 내고 선혈을 입에 넣어 드렸고, 어머니는 석 달을 더 살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이 사실을 듣고 "천효(天孝)의 감응(感應)"이라고 칭송하였다.
김기연은 일찍이 조삼계(趙三溪)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느라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김기연의 저술로는 『경람집(擎覽集)』이 있다.
[묘소]
김기연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 ‘항거(項巨)’에 있다.
[상훈과 추모]
후손들은 1984년 김기연의 묘소 앞에 ‘효행 묘비(孝行墓碑)’를 세웠다. 이병태(李炳台)가 쓴 비문에는 "모친께서 병환이 위중함에 허벅지에 칼을 찔러 수십 수저의 선혈을 받아 어머니께 드시게 하였더니 석 달을 더 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