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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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門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세림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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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시기/일시 | 1963년 1월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에서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1월 -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7월 1일 -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 1동에서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 3동 분리·신설 |
변천 시기/일시 | 1991년 9월 1일 -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 2동에서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 4동 분리·신설 |
공원 | 쌍문 근린공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박물관 | 옹기 민속 박물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97-15 |
도서관 | 서울 시립 도봉 도서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22-163 |
대학교 | 덕성 여자 대학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 144길 33 |
병원 | 한일 병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3동 388-1 |
학교 | 정의 여자 중학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4동 150-1 |
학교 | 정의 여자 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4동 150-1 |
성격 | 법정동 |
면적 | 2.85㎢[2019년 12월 31일 기준] |
가구수 | 32,969세대[2020년 1월 기준] |
인구[남,여] | 78,789명(남 37,990명, 여 40,799명)[2020년 1월 기준]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쌍문 1동, 쌍문 2동, 쌍문 3동, 쌍문 4동을 관할하고 있다.
[명칭 유래]
쌍문동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자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계성과 그 부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그 아들이 전국을 수소문하여 유명한 의원을 모셔다가 치료하려 애를 썼지만, 어떤 의사도 그들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여 결국 계성과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계성의 아들은 부모의 장례를 치른 후 삼년상을 지내기 위해 부모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묘소를 돌봤다. 하지만 그는 3년이 지난 후에도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고, 10년이 다되도록 정성을 다해 무덤을 돌보다가 기력이 다해 그 앞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이 이야기를 후대까지 전할 목적으로 효자문을 세웠는데, 그의 효성은 보통 사람이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높다 하여 효자문을 하나 더 세웠다.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쌍문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역시 효자와 관련한 것으로, 효자 남궁지(南宮墀)와 그의 부인 정씨(鄭氏), 그리고 아들인 남궁조(南宮鋽) 부자가 고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게 되었는데, 부자(夫子)의 묘소가 노해 파출소에서 볼 때 남과 북에 각각 있어 ‘쌍문’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이 있었으므로 ‘쌍갈 무늬’가 점차 쌍문(雙門)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서는 양주군 해등촌면의 소라리(所蘿里)와 계성리 지역에 해당하였다. ‘쌍문’이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이 통합되어 노해면이 설치되었을 때, 소라리와 계성리가 통합되면서 쌍문리로 처음 나타났다.
해방 후 서울에 인구가 집중하면서 인구의 분산과 도시 성장을 위해 행정 구역 확장이 결정되고, 이에 1963년 1월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관할 구역이 변경되었다. 이때 양주군 노해면이 서울특별시 성북구 노해 출장소에 편입되면서 성북구 쌍문동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서울의 도시화가 가속화되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시 행정 구역 역시 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73년 1월 대통령령 제6548호로 행정 구역이 성북구와 도봉구로 분할되면서 도봉구 쌍문동으로 편입되었다.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981호에 의해 쌍문 1동과 쌍문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413호에 의해 쌍문 1동에서 쌍문 3동이 분리·신설되고, 1991년 9월 1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조례 제164호에 의해 쌍문 2동에서 쌍문 4동이 분동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만들어졌다.
[자연 환경]
동쪽으로는 창동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수유동, 북쪽으로는 방학동과 경계하고 있다. 인근에 도봉산과 북한산, 우이천이 있어 자연 환경이 뛰어나며, 쌍문 근린공원 등이 있어 녹지 공간이 풍부하다. 1997년 조사에 따르면 쌍문동은 지리적 위치상 서울의 대기 오염 물질이 이동하는 통로의 끝에 있고 분지여서 공기가 정체되는데다 차량 통행도 많아 전국에서 가장 대기 오염이 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넓은 녹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도봉구에서 매연 배출 업소와 공사장, 자동차 배출 가스 등에 대한 단속 및 관리를 강화하여 맑은 공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효문 중학교 인근에 친환경 텃밭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분양함으로써 쾌적한 자연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황]
2019년 12월 31일 기준 전체 면적은 2.85㎢으로 도봉구 전체 면적의 13.5%이다. 2020년 1월 말 인구는 총 7만 8789명[남자 3만 7990명, 여자 4만 799명]에 3만 2969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유적지로는 내시 종파(內侍宗派)의 하나인 판곡파(板谷派) 공동 묘소가 분포해 있고, 덕성 여자 대학교와 쌍문 근린공원, 서울 시립 도봉 도서관 등의 기관이 위치해 있다.
2010년 쌍문 2동에서 ‘마을 보석 찾기’ 사업을 공모해 결정된 ‘노해 마을 로드 갤러리’를 추진하였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활발한 참여로 진행되었는데, 담장마다 특성에 따라 주제를 할당하여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하였다. 2012년에는 도시 농업 활성화 및 생태계와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쌍문동 232구좌 총 7,176㎡ 면적의 텃밭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분양하였으며, ‘둘리’ 문화 관광지를 개발하기 위해 쌍문 근린공원 내 2,4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둘리 뮤지엄을 조성하였다. 또한 지역의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쌍문 근린공원 내 유휴 공간에 이동식 도서관인 ‘숲 속 도서관’ 설치를 계획하였고, 쌍문 중앙 감리 교회 내에 ‘꿈을 심는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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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 내용 현행화 | 2019년 12월 31일 기준 전체 면적은 2.85㎢으로 도봉구 전체 면적의 13.5%이다. 2020년 1월 말 인구는 총 7만 8789명[남자 3만 7990명, 여자 4만 799명]에 3만 2969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유적지로는 내시 종파(內侍宗派)의 하나인 판곡파(板谷派) 공동 묘소가 분포해 있고, 덕성 여자 대학교와 쌍문 근린공원, 서울 시립 도봉 도서관 등의 기관이 위치해 있다. 2010년 쌍문 2동에서 ‘마을 보석 찾기’ 사업을 공모해 결정된 ‘노해 마을 로드 갤러리’를 추진하였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활발한 참여로 진행되었는데, 담장마다 특성에 따라 주제를 할당하여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하였다. 2012년에는 도시 농업 활성화 및 생태계와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쌍문동 232구좌 총 7,176㎡ 면적의 텃밭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분양하였으며, ‘둘리’ 문화 관광지를 개발하기 위해 쌍문 근린공원 내 2,4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둘리 뮤지엄을 조성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