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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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致禮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41년 - 한치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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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92년 - 정경부인 죽산 안씨 묘표 건립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99년 - 한치례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99년 - 한치례 별세 후 정경부인 죽산 안씨 묘표에 비문 추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00년 - 한치례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한치례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N37°39'56.8352"E127°01'20.6369" |
성격 | 묘 |
양식 | 단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한치례(韓致禮)[1441~1499]|죽산 안씨(竹山安氏)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죽산 한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한치례의 묘.
[개설]
한치례(韓致禮)[1441~1499]는 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절(子節)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한확(韓確)이고, 어머니는 이조판서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466년(세조 12) 훈련원 도정이 되고, 이어 병조참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누이동생이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 왕후 한씨이므로 성종이 즉위한 뒤 왕의 외숙으로서 중용되었다. 동지중추부사·병조참판·판중추부사·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1499년(연산군 5)에는 영돈령부사로 서릉 부원군(西陵府院君)에 진봉되었다.
고모가 명나라에 공녀로 가 성조(成祖)의 여비(麗妃)가 되었으므로 명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명나라로부터 ‘한족(韓族)’이라 불렸다.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절로 다녀왔으며, 세종의 부마인 양효공 안맹담의 차녀와 혼인하였다. 시호는 장간(莊簡)이다.
[위치]
한치례 묘(韓致禮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번지 죽산 한씨 묘역에 위치해 있다. 천주교 혜화동 공원 묘지 안의 ‘와폭(臥瀑)’, ‘연월암삼폭(延月壧三瀑)’ 등의 바위 글씨가 있는 계곡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능선을 올라가면 있다. 묘역 입구에 한치례 신도비가 있다.
[형태]
한치례 묘는 부인 죽산 안씨(竹山安氏)와 단분 합장묘로, 서남향을 하고 있다. 묘표,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문인석 2쌍, 신도비 등을 갖추고 있다. 묘표는 이수형(离首形) 2면 비이다. 이수 전면에는 이무기 한 마리가 역동적인 몸동작을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여의주를 표현하지 않았다. 이무기 주변 및 양 측면과 뒤쪽에는 운문을 조각하였다. 크기는 이수 60×22×39㎝이고, 비신 51×16×95㎝이다. 정경부인 안씨가 사망한 1492년(성종 23)에 묘표를 세우고, 후에 한치례가 별세한 1499년(연산군 5) 그 묘표에 비문을 더하였다.
문인석은 2쌍인데, 모두 복두 공복(僕頭公服)이다. 봉분 가까이 있는 문인석은 눈썹이 두툼하게 표현되었고, 복두 뒤에는 각(脚)을 양옆으로 올린 전각(殿脚)을, 그리고 허리 뒤에는 야대(也帶)를 새겼다. 크기는 전체 높이 230㎝이다. 봉분에서 떨어진 문인석은 눈이 크고 동그라며, 복두 뒤에는 양옆으로 내려간 각을 크게 표현하였다. 허리 뒤로는 야대를 조각하였는데, 띠에 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208㎝이다.
장명등은 팔모지붕의 옥개석을 갖췄으며,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에는 사각의 화창(火窓)을 두었다. 크기는 전체 높이 175㎝이다. 향로석은 팔각 향탁으로 상대의 각 면에는 보상화를, 그 아래에는 안상을 조각하였다. 하대의 윗면에는 복련(覆蓮)을 장식하였다. 크기는 전체 높이 75㎝이다.
한치례 신도비는 1500년(연산군 6) 한치례의 장손인 한세창이 건립하였으며, 이수 방부형으로 이수는 거의 반원형이다. 이수에는 쌍룡이 가운데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비대의 상면에는 단판 복련을 양각하였으며, 대석의 앞뒷면은 2단으로 나누어 상단과 하단에 각각 안상문을 배치하고 그 안에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금석문]
한치례 신도비는 비문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전액은 ‘장간 한공 신도비명(莊簡韓公神道碑銘)’이다. 비문은 한치례의 사촌형이자 당시 좌의정이었던 청성군(淸城君) 한치형(韓致亨)이 홍귀달(洪貴達)에게 부탁하여 지었다.
묘표의 비신 앞면에는 ‘영돈녕부사 서릉 부원군 증 시 장간 안공 지묘(領敦寧府事西陵府院 君贈諡莊簡安公之墓)’라 새겼고, 뒷면에는 상단에 ‘정경부인 안씨 묘갈(貞敬夫人安氏墓碣)’이라 새기고, 그 아래 음기를 기록하였다. 어세겸(魚世謙)이 짓고, 임사홍(任士洪)이 썼다. 입석 연대는 ‘홍치 기원지 오 년 오월 일 장손 세창 입석(弘治紀元之五年五月日長孫世昌立石)’의 명문으로 보아 1492년임을 알 수 있다.
[현황]
한치례 묘는 조선 전기의 묘역으로, 후손들에 의해 전체적으로 비교적 잘 관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석물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잘 남아 있다. 조선 전기 묘제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능묘 조각 연구 자료로도 매우 귀중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