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51 |
---|---|
한자 | 坡平尹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나종현 |
세거|집성지 | 파평윤씨 세거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원당 마을 |
---|---|
성씨 시조 | 윤신달(尹莘達) |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세거 성씨.
[연원]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을 도와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졌다. 영평은 파평(坡平)의 이칭으로 이후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윤신달은 그 출신이나 근원을 명확히 알 수 없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주의 파평산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올라 그 안에서 윤신달이 나왔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파평을 중심으로 윤신달의 후손들이 자리 잡으면서 상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파평윤씨는 고려 시대 주요 문벌 귀족 성씨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 시대에 와서도 명문의 지위를 유지하고 수차례 왕후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주요 파로는 함안파·남원파·덕산군파(德山君派)·문정공파(文定公派)·신영공파(新寧公派)·대언공파(代言公派)·봉록군파(奉祿君派)·판서공파(判書公派)·야성파(野城派)·전의공파(典儀公派)·소정공파(昭靖公派)·원평군파(原平君派)·소도공파(昭度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소부공파(小府公派)·대위공파(大尉公派) 등이 있다.
[입향 경위]
1400년 경 파평윤씨 일가가 현재의 도봉구 방학동 원당 마을로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구체적인 입향 경위와 입향조 등은 알 수 없다.
[현황]
1980년대 이후로 도시화가 진행되어 2012년 현재 도봉구 방학동 원당 마을에서 파평윤씨의 세거 모습을 살펴볼 수는 없다. 파평윤씨 일가가 원당 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 마을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원당 샘[원당천, 또는 피양우물]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본래 원당 샘은 2009년 이후로 물이 흐르지 않았으나 2011년 11월에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