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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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惠疇 |
이칭/별칭 | 자순(子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혜원 |
출생 시기/일시 | 1644년 - 이혜주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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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6년 - 이혜주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99년 7월 - 이혜주 춘천 방어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710년 - 이혜주 졸 |
묘소|단소 | 전주 이씨 임영 대군파 오산군 묘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평안 병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순(子順).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 대군(臨瀛大君)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이만영(李晩榮)이고, 아버지는 남원 진관 병마절제도위(南原鎭管兵馬節制都尉)를 지낸 이이태(李以泰)이다. 어머니는 조형원(趙泂源)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민광경(閔光炅)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김익(金榏)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활동 사항]
이혜주(李惠疇)는 1644년(인조 22)에 태어났으며,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온성 부사(穩城府使),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을 거쳐 1696년 진위 현령(振威縣令)으로 재직하면서 진휼의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699년 7월 춘천 방어사(春川防禦使)에 제수되었다. 1706년(숙종 32) 천 냥에 가까운 은화(銀貨)로 여러 마리의 양마(良馬)를 사서 권관 요직(權官要職)에 있는 사람들에게 뇌물 준 일로 대사간(大司諫) 이야(李壄) 등에게 탄핵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하여 유득일(兪得一)·조경(趙絅)·이지익(李之翼) 등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후 평안 병사, 전라 병사 등을 역임하였다. 1710년(숙종 36)에 세상을 떠났다.
1743년(영조 19)에 우의정이었던 조현명(趙顯命)이 이혜주의 양마 뇌물 사건에 대해 언급한 홍계희(洪啓禧)의 상소의 표현을 지적하고, 이혜주가 중신(重臣)에게 말을 주었던 것은 호마(胡馬)[중국 북방이나 동북방 등지에서 나던 말]를 엄하게 금지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변론하기도 하였다.
[묘소]
이혜주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며 이 일대에 전주 이씨 임영 대군파(臨瀛大君派) 오산군계(烏山君系)의 종중묘(宗中墓)가 모여 있다. 이혜주의 묘소는 묘 하나에 이혜주 자신과 그 부인인 여흥 민씨, 안동 김씨를 합장한 것인데, 봉분 주위로 근래에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 주변에 묘표와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등을 잘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