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44 |
---|---|
한자 | 睦天根 |
이칭/별칭 | 중회(仲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기승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목진공 묘갈을 쓴 조선 후기 문인.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중회(仲晦). 현헌공파(玄軒公派)의 16세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 사간·승정원 승지·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낸 목임유(睦林儒)로, 목천근(睦天根)[1681~1718]은 슬하의 다섯 아들 가운데 막내이다. 부인은 청주 한씨(淸州韓氏)로 1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목천근은 33세 때인 1713년(숙종 39) 증광시에서 3등 66위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717년(숙종 43) 성균관 학생들이 김장생(金長生)을 문묘(文廟)에 종사할 것을 조정에 청하자 김화윤(金華潤)·권구경(權九經) 등과 함께 반대하는 논의를 주도하다 과거 응시를 금지 당했다는 기록이 『하려 선생 문집(下廬先生文集)』에 보인다.
[학문과 저술]
어릴 적부터 글씨를 잘 써서 1704년(숙종 30) 4월 9대조인 목진공(睦進恭)의 묘갈을 새로 만들 때 글씨를 썼다고 한다. 목천근이 해서체(楷書體)로 쓴 묘갈은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번지의 사천 목씨 묘역에 있다.
[묘소]
『사천 목씨 세보(泗川睦氏世譜)』에 금천(衿川)[지금의 경기도 과천시] 율리(栗里)에 부인과 함께 합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