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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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진만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정치권력의 확보와 행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일련의 활동.
[개설]
지역 정치는 특정한 공간적 지형이 확정된 이후 선거라는 기제를 통하여 권력이 배분되고 행사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도봉구의 정치는 1971년 7월 1일 도봉구가 신설된 이후 직접 선거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선거의 결과를 토대로 그 특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
[변천]
1. 도봉구의 형성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쌍문동, 방학동, 창동, 도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도봉구의 공간적 지형은 여러 단계를 거쳐 확정된 것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원래 조선 고종 대와 일제 강점기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해방 4년이 되는 1949년 8월 13일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는 22개 행정동을 관할하는 자치 단체로 도봉구가 신설되었다. 1988년 1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리되었고, 1995년에는 미아동, 수유동, 번동 등 18개 동이 강북구로 분리되어 나갔다. 그러므로 도봉구의 독립적인 정치는 1973년 이후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와 같은 행정 구역은 1995년 이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2. 정치 활동
1973년 도봉구가 신설되기 직전인 1972년 12월 23일 실시된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1987년 12월 16일 민주화 이후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 전까지 모든 대통령 선거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나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도봉구 지역의 민심과 정치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도봉구가 신설된 이후 국회 의원 선거는 직접 선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1978년 11월 24일 실시된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부터 도봉구는 실질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 의원을 가질 수 있었다.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의 국회 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로 실시되었다. 당시 이 중선거구제는 박정희 정권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도심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의 당선을 보장하고, 유리한 농어촌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의 복수 당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채택된 제도였다.
하지만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도봉구[제5선거구]는 두 명의 야당 국회 의원을 배출하였다. 최다 득표는 야당인 신민당으로 출마한 고흥문 후보[40.9%]가 획득했으며, 차점 득표자는 무소속 홍성우 후보[25.6%]였다. 여당인 민주 공화당의 신오철 후보는 21.2%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하였다.
동일한 방식으로 실시된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제6선거구]에서는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홍성우 후보가 여당인 민주 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35.8%의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 한국당의 김태수 후보가 24.4%의 차점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한편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신오철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9.6%의 득표율로 또 다시 3위를 기록하며 낙선하였다.
신한 민주당의 야당 돌풍이 거셌던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는 기존에 사용했던 제0선거구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도봉구 갑과 을이라는 선거구 명칭이 새롭게 부여되었다. 이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조순형 신한 민주당 후보가 42.4%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민주 정의당 홍성우 후보가 24.1%의 득표율로 3선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도봉구 갑과 을 선거구 모두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1등을 차지하였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도봉구 갑에서 33.6%, 그리고 도봉구 을에서 33.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김대중 후보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27.0%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민주화 이후 도봉구의 정치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척도라고 볼 수 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후 실시된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하나의 지역구에서 한 명의 국회 의원을 선출하는 단순 다수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다. 이 국회 의원 선거에서 도봉구에서는 여당 국회 의원을 한 명도 배출되지 못하였다. 도봉구 갑에서는 조순형 의원이 급진적인 한겨레 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하고, 여러 차례 낙선한 신민주 공화당 신오철 후보에 대한 동정심이 작용하여 후보자들이 분열한 상황 속에서 신오철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도봉구 을에서는 평화 민주당 이철용 후보가 32.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특징]
이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진행된 선거들을 살펴보면 대통령 선거의 경우 진보 정당의 후보인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득표율을 기록하는 특징을 보였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경우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유일하였다.
또한 국회 의원 선거의 경우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이명박 정권의 밀월 기간 하에서 젊은 정치 신인을 공천하여 한나라당이 승리했던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회 의원 선거에서 진보 정당인 민주당, 새 정치 국민 회의, 열린 우리당, 민주 통합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도봉구는 서울에서 진보 정치의 메카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방 선거는 중앙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주로 대통령과 여당을 평가하기 위한 선거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대통령 선거나 국회 의원 선거와 비교하여 지방 선거의 정치적 비중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여 유권자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서 당해 정권을 심판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진보적 성향이 강한 서울특별시 도봉구도 여당이 아닌 후보가 기초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특징을 보였다. 즉 보수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했을 때는 진보 정당의 후보가, 그리고 진보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했을 때는 보수 정당의 후보가 기초 단체장으로 당선되는 특징을 보였다.
도봉구 의회는 1990년 12월 31일 「지방 자치법」 제9차 개정[법률 제4310호]을 통해 지방 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처음 구성되었다. 제1대 도봉구 의회는 50명의 구의원으로 구성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의회였다. 하지만 1995년 3월 1일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강북구가 분구됨으로써 도봉구 의회는 현재 14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현황]
도봉구 지역 정치 현황과 관련하여 현재 민주 통합당 이동진 구청장이 민선 5대 구청장으로 선출되어 2010년 7월 1일부터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도봉구 의회는 현재 총 14명의 구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당별로는 7명이 새누리당 소속이고, 7명이 민주 통합당 소속이다. 의장은 민주 통합당의 김원철 구의원이 맡고 있으며 운영 위원회, 행정 복지 위원회, 재무 건설 위원회의 세 개 상임 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리고 특정 사항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구의회가 판단할 때와 다수의 상임 위원회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