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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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巫俗信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권선경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민간에 전승되는 습속.
[개설]
민간에서 무당(巫堂)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을 무속이라고 한다. 따라서 무속 신앙에서 신(神)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당은 필수적인 존재이다. 한국의 무당은 크게 한강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의 강신무와 한강 이남의 세습무로 나뉜다. 한국의 무당을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누는 것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며, 두 유형 간의 넘나듦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 강신무와 세습무로 구분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한강 이북에 속하는 지역으로 강신무에 의한 무당굿이 전승되는 곳이다. 도봉구에서 전승되는 무속 신앙은 마을굿, 당주 무당과 마을 주민[단골]과의 관계, 가정 신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종류]
도봉구 도봉동과 방학동의 무속 신앙은 크게 마을 신앙, 가정 신앙, 단골무당과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신앙에는 전승이 끊긴 서원말과 원당 마을의 도당굿과 원당 마을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행목대신제를 꼽을 수 있다. 도봉동과 방학동에서 전승되던 서원말 도당굿과 원당 마을 도당굿은 모두 무당굿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서원 마을 주민 이정로에 의하면 서원말 도당굿은 이틀에 걸쳐 연행하던 굿으로, 당주 무당 외에 여러 명의 조무와 악사들을 대동한 큰굿이었다고 한다. 원당 마을 도당굿도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엿장수까지 오는 큰 잔치였다고 한다. 원당 마을 도당굿의 당주 무당은 ‘모래내 만신→ 갑진이 할머니→ 꽃방집 할머니’ 등으로 이어졌다. 도당굿은 먼저 산신제를 끝낸 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원당 마을 도당굿은 ‘사냥거리’와 ‘무감서기’ 등 서울 마을굿의 특징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정 신앙의 정기 의례인 상달 고사를 단골무당이 집전했다는 제보는 없으나 원당 마을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해서 성주를 새로 받아 모실 때에는 당주 무당이 와서 굿이나 고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원당 마을 경로당 총무인 이미자도 성주를 새로 받아 모실 때 갑진이 할머니가 와서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갑진이 할머니는 원당마을에 거주하던 원당 마을 도당굿의 당주 무당으로, 원당 마을의 당주 무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봉동의 경우에도 방학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당굿과 마찬가지로 무당이 집전하던 가정 신앙의 의례 역시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당주 무당과 단골과의 관계는 원당 마을 당주 무당이었던 ‘모래내 만신→ 갑진이 할머니→ 보리 보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황]
도봉구 방학동 원당 마을에서는 도당굿의 전승은 끊겼지만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그리고 당주 무당과 주민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무속 신앙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원당 마을에서 전승되던 도당굿은 당집이 훼손되고, 도당 고개[도당재]가 있는 산이 개발되면서 당굿의 전승이 끊겼다. 도당굿의 전승이 끊기자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의 원당샘 옆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10여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행목대신제’라고 부른다. 마을굿을 새롭게 재창조하여 전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당굿을 할 때처럼 여러 무당과 악사들이 함께 하는 큰굿은 아니지만 원당 마을에 살던 보리 보살이 고사 형식으로 집전하고 있다. 원당 마을 경로당 총무인 이미자에 의하면, 고사 형식으로 간단하게 한다고 하지만 사실을 세우고 기를 뽑는 등의 절차는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고 한다.
2. 무당과 단골과의 관계
방학동 원당 마을은 당주 무당과 단골과의 관계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원당 마을 도당굿의 당주 무당이었던 모래내 만신은 가을마다 동네에 와서 벼 한 말씩을 걸립해 갔다. 걸립을 통해 마을 주민과 무당이 도당굿을 할 때에만 일시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정기적인 관계를 맺는 단골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래내 만신 다음의 당주 무당인 갑진이 할머니도 원당 마을 주민들과 단골 관계를 유지했다. 이미자를 비롯한 원당 마을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은 소원하는 바가 있을 때 쌀 한 말을 가지고 갑진이 할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또한 이미자의 경우 시동생이 결혼할 당시 갑진이 할머니에게 굿은 아니지만 작은 고사로 여탐을 했다고 한다.
현재도 방학동의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를 주관하는 보리 보살과 단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리 보살은 행목대신제를 주관하는 것 외에도 원당 마을 경로당에 자신에게 시주 들어온 쌀을 갖고 온다거나 할머니들이 관광을 떠날 때 찬조를 하는 등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방학동 원당 마을의 경우에는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라는 마을 신앙의 재창조, 당주 무당과 주민과의 단골 관계 유지 등만을 보더라도 민속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원당 마을은 도당굿의 전승이 당집의 훼손과 같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끊기자 예전부터 영험하다고 여기던 은행나무를 신체(神體)로 한 행목대신제라는 새로운 마을 신앙을 재창조하였다. 원당 마을에서 내림굿을 받은 보리 보살이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를 집전하여 주민과 지속적인 당주 무당과 단골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