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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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五德 |
영어음역 | Gwon Odeok |
이칭/별칭 | 성시,농은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동희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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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관직 | 금융조합총대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성시(性施), 호(號)는 농은(農隱), 증조부는 권종석(權鍾奭), 아버지는 권영목(權寧穆)이며, 어머니는 수원백씨(水原白氏)이다. 13세에 정덕영(鄭德永)의 딸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활동사항]
증조부 권종석의 유훈을 받아 남다르게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다. 모친 수원백씨의 가정법도에 대한 교훈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한 때도 빠지는 일이 없이 봉양하였다. 또한 선조의 제향을 정성껏 봉행함은 물론, 이조(李朝) 왕실의 제삿날이면 국기판(國忌板)을 챙겨보고 사방에 불을 밝혀 추모하였다.
그 밖에도 금융조합총대와 이장을 맡아보면서 부락민 선도와 어려움 해결에 힘썼으며, 1940년 충청북도청에 진정하여 우등제(禹登堤)를 축조하여 120정보의 수리 안전답을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사촌동생 권오상(權伍常)과 더불어 전화사업을 추진하여 1949년 충청북도 음성군 내곡리 오지까지 전화를 끌어들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2월 15일 전국선행자표창위원회에서 효자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