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7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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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載學妻廣州李氏 |
영어음역 | Lady Yi from Kwangju, Jeon Jaehak'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양병준 |
성격 | 열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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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
성별 | 여 |
생년 | 1908년 |
몰년 | 1958년 |
본관 | 광주(廣州)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내사령(內史令) 이자성(李自成)의 후손인 이장회(李章會)의 셋째 딸이다.
[활동사항]
전재학(全載學) 처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4세의 어린 나이에 전재학에게 출가(出嫁)하였다. 광주이씨는 남편이 병석에 눕게 되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남편은 19세에 사망하였다.
이때 나이 21세의 광주이씨는 청상과부(靑孀寡婦)로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홀시아버지가 있고 9개월 된 유복자가 있어 마음을 돌이켜 시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고 유복자는 훌륭하게 양육하여 가풍(家風)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러한 광주이씨의 모습은 시가(媤家) 선대의 효열(孝烈)을 본받았다고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이에 당국으로부터 많은 표창과 포상을 받았다. 그러나 우연히 병이 나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 치료하려고 노력하였지만, 1958년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82년 광주이씨의 효성과 정조를 지킨 행실 등을 기리기 위하여 추모의 비석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