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861 |
---|---|
영어의미역 | Kiln Site |
이칭/별칭 | 도요지,자기산포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길경택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던 터.
[개설]
가마는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登窯]로 나눈다. 한데가마에서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구워졌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 발굴된 예가 없고, 확인되는 가마는 모두 굴가마이다. 전통시대의 가마는 대부분 파손되어 터만 남은 상태에서 확인되므로 가마 터 유적이라고 부른다.
가마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인 연소실(燃燒室)과 소성될 토기가 야적되는 방인 소성실(燒成室)로 분리된다. 이 중 소성실은 밀폐 가능한 시설물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연료와 토기를 함께 야외에 쌓아 놓고 굽는 한데가마(노천요)와 다른 점이다.
음성 지역의 가마 터로는 청자가마 터와 백자가마 터·옹기가마 터·기와가마 터 등과 목탄요가 있다. 음성 지역의 가마 터로 발굴·조사된 곳은 생리 청자가마 터와 그 주변에서 우연히 확인된 목탄가마 터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표 조사된 유적이다. 확인된 가마 터의 수도 10여 곳에 지나지 않아 비교적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청자가마 터]
충청북도에서 유일하게 청자가마 터로 확인된 곳은 충청북도 음성군 무극면 생리에 있는 가마 터로 골프장 부지에서 1999년 충북대학교가 발굴하였다. 회구부(灰丘部)와 초벌편이 밀집·분포한 가마의 끝자락이 남아 있어 윤곽을 추정할 수 있었는데 정북향으로 길이는 20m 내외이며 너비는 120㎝ 정도의 규모였다.
수비 시설을 갖춘 작업장을 확인하였고, 그 옆에 인접한 곳에서 원료층을 찾아냈다. 또한 수습된 도편의 기형과 압출 양각 기법을 통해 볼 때, 11~12세기 강진 용운리 관요의 성격과 맥을 같이하는 유적이다.
[백자가마 터]
음성 지역에서 발견되는 백자가마 터는 철화백자를 동반하는 가마 터와 백자만 수습되는 가마 터만 확인된다. 물론 분청사기 가마 터나 청화백자 등을 구운 가마 터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반적인 조사가 미흡하여 현재까지 확인된 것이 없는 실정이다. 또 확인된 가마 터들도 아직 발굴·조사되지 않아 그 성격을 살피는 데는 자료가 극히 부족하다.
철화백자를 동반하는 가마 터는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와 사곡리 가마 터에서 확인된다. 17세기에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촌리 철화백자가마 터에서는 대접, 접시류와 잔, 바리, 병, 제기 등이 수습되었다. 이들 자기의 굽은 거의 오목 굽 형식이고, 모래받침으로 포개어 구웠다. 특히 접시류에는 그릇 안 혹은 밖에 약식화한 철회문(鐵灰紋)과 붓 끝으로 찍거나 꾹꾹 누른 것이 많이 있어 이곳 가마 터 자기의 한 특징을 이룬다.
사곡리 철화백자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진 곳으로 가마의 규모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수습되는 백자편에 철화흔이 다량 확인되고, 순백자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생산하던 지방 가마로 생각된다.
백자만 수습되는 가마 터로는 동음리·삼생리·육령리·인곡리 백자가마 터 등이 있고, 삼성면의 용성리 자기 산포지 등에서도 백자가 채집되고 있다. 이 가마 터들은 모두 음성이나 인근 지방에서 필요로 하는 백자를 생산하여 공급하였던 곳으로 사기점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탄가마 터]
목탄가마 터는 음성 지역에도 다수가 있었을 것이나 발굴·조사된 유적이 많지 않기에 목탄가마를 조사한 예는 드물다. 다만 음성군 생극면의 생리 청자가마 터 주변에서 확인된 2기의 목탄가마의 예가 있을 뿐이다. 생리 숯가마 1호는 규모 215×140㎝의 작은 타원형이다. 3㎝ 두께의 벽선이 20㎝ 높이로 남아 있으며 아궁이 부분에는 두꺼운 재층이 있고 굴뚝부는 확인할 수 없다.
생리 숯가마 2호는 규모 280㎝×200㎝이고, 아궁이와 굴뚝부가 거의 완전히 남아 있다. 아궁이의 경우 좌우에 이맛돌이 남아 있고, 길이가 120㎝인 타원의 연통형 굴뚝이 70° 각도로 세워져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1·2호 목탄가마의 소토에 대한 고고 지자기 연대 측정 결과 가마의 최종 사용 연대가 서기 275년으로 추정되었다.
[기타 가마 터]
옹기가마 터가 확인되는 곳은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 옹기가마 터뿐이다. 주변의 흙을 태토로 이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크고 작은 옹기를 구워 공급하던 곳이다. 기와 가마 터로 지표 조사된 곳은 소이면의 비산리 기와가마 터 한 곳뿐인데, 현장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다만 기와편만이 수습된다. 동네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