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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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山里江陵金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Geumsanri Single-clan Village of the Gangneung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정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강릉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금산리(金山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조선 중종 대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長安洞), 제동(堤洞), 구동(鷗洞), 성하(城下)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에는 강릉 최씨 평장공파의 시조인 최입지(崔立之)의 묘가 있는 산이 있는데, 그 형국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모양이라 하여 금산(琴山)[『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에는 금산(琴山)으로 적고 있다]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강릉김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금(琴)’자 대신 음이 같은 ‘금(金)’자를 써서 금산리라 한다.
금산리에서 강릉김씨들이 500년 동안 대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마을을 강릉김씨 집성촌이라 부른다.
[형성]
강릉김씨는 통일 신라기에 명주군왕이었던 김주원으로 부터 비롯된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여러 파로 나뉘어져 왔으나, 금산리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아직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김주원의 23세손 김반석(金盤石)의 차자인 김광헌(金光軒)의 후손들이다.
김광헌의 호는 정봉(鼎峰)이다. 정봉은 당시 금산리의 주봉으로, 모습이 솥처럼 보이고 세 가닥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솥의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김광헌은 함헌(咸軒)과 절친한 친구사이였는데 서로 친구의 호를 지어주었다. 김광헌은 함헌에게 그의 마을 앞에 있는 칠봉산(七峰山)[구정면 제비리]을 따서 ‘칠봉’이라 지어주고 함헌은 그의 마을 뒤에 있는 정봉을 따서 ‘정봉’이라 지어 주었다고 한다.
김광헌은 중종대에 진사과에 등재하였으나 출사하지 않고 금산리 정봉산(鼎峰山) 하금산평(下琴山坪)에 분가하여 시서(詩書) 읽는 것과 나무 심는 것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았다. 네 아들을 키웠는데 후손이 금산을 중심으로 세거(世居)하여 금산파(金山派)라 하였다.
장자인 김열(金說)의 호는 임경당(臨鏡堂)으로 평강훈도(平康訓導)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효친(孝親)과 우애로 정원(庭園)과 양림(養林)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니 당시 사람들이 임영처사(臨瀛處士)라 칭하였다. 율곡 이이가 호송설(護松說)로 김열의 효친사상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강릉김씨가 금산리에 동족촌을 형성한 시기는 김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정봉(鼎峰)[158m]의 남쪽사면과 남대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의 접촉부인 산록에 형성되었다.
[변천]
1914년 일제 때에 금산(金山)이라고 개명하기 전에는 건금리(建金里)였으며, 1930년대 전체 가구 수 가운데에 동족가구 수는 8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는 50% 를 점한 이후 계속 감소하여 최근에는 금산1·2리 200여 가구 중에서 20%에 해당하는 40여 가구에 100여 명 남짓만이 살 정도로 축소되어 왔다.
강릉김씨 문중 소유지는 금산리에 가장 많았지만, 위촌리, 운산리, 산북리, 신석리 등에도 분산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농지개혁이 시행되면서 크게 축소되었다고 한다. 이 동족촌에서는 동족원 상호간 지주소작제가 행해졌고, 긴밀한 유대관계를 상징하듯 20세기 중기까지도 연중 모내기와 추수 시에 각각 한 번씩 종가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 왔다고 한다.
[자연 환경]
마을 뒤에는 솥봉이 있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앞에는 넓은 금산들과 남대천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背山臨水形)을 이루고 있다. 굽이굽이 대관령을 내려오면 왼쪽편의 정봉 아래에 옛 가옥들과 현대 가옥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옥들은 주로 작은 곡지(谷地)나 산록에 입지하였다. 이는 봄철의 심한 서풍과 집중 호우시의 홍수피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 앞의 충적지는 대부분 논으로 개간되었고, 전체적으로 밭 면적은 논 면적에 비하여 협소하다.
[위치와 교통]
동쪽으로는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물 건너 회산동, 서쪽으로는 관음리·구산리, 남쪽으로는 내 건너 구정면 제비리, 북쪽으로는 위촌리와 접해 있다. 금산리를 통과하는 시내버스는 501번(왕산 종점), 502번(보광리 종점), 503번(가마골 종점), 504번(성산 종점), 505번(오봉 종점), 507번(고단 종점), 508번(고단 종점), 509번(관음리 종점), 510번(산북 종점) 등이 있어 교통편이 편리하다.
[현황]
현재 금산 1·2리 강릉김씨 집성촌에 사는 김씨들은 40여 가구에 100여 명 정도이다. 이 마을의 상징적 경관 요소로는 종가와 그 안의 사당 및 임경당(臨鏡堂)[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46호], 상임경당(上臨鏡堂)[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55호] 건물이 있다. 묘역은 종가에 근접하지 않고 문중산이 있는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심복사지 부근, 오봉리, 관음리, 위촌리 등에 분산되어 있다. 시조인 명주군왕릉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에 있는데, 이는 음택풍수 및 문중산의 위치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시제는 음력 3월 29일, 9월 15일, 9월 25일에 행해지며, 벌초는 음력 8월 1일에 이루어진다. 시조의 시제는 명주군왕 능소에서 음력 4월 20일에 거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