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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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水+奭 |
영어공식명칭 | Shin Seok |
이칭/별칭 | 호이(浩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출생 시기/일시 | 1650년 - 신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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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4년 - 신석 판미동으로 이주 |
몰년 시기/일시 | 1724년 - 신석 사망 |
거주|이주지 | 판미동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고령 |
대표 관직 | 증 좌승지 |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학자.
[가계]
신석(申水+奭)[1650~1724]의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호이(浩而)이다. 영의정을 역임한 신숙주(申叔舟)의 다섯째 아들 신준(申浚)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신득윤(申得允)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신경여(申慶汝)와 신경류(申慶流) 두 아들이 무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신상권(申尙權)이 1762년(영조 38) 정시(庭試)에서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신석은 1674년(현종 15) 가평의 조종(朝宗) 마을로 이주하여 판미동(板尾洞)을 개척한 후 세거하였다. 흉년이 들면 가마솥에 죽을 쑤어 인근 주민에게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항상 곡식을 비축하여 흉년에 대비하였다. 주자의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율곡 이이의 「해주향약(海州鄕約)」을 본받아 「판미동동헌(判尾洞洞憲)」을 만들어 마을 주민을 교화하고 친목을 도모하였다. 좌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