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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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山鄕案 |
영어음역 | Gimsanhyangan |
영어의미역 | a List of Local Gentry in Gimch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조선 후기 김산군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개설]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김산 향안(金山鄕案)」은 1861년(철종 12) 양사당[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을 중수하던 중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산 향안」에 등재된 양반 사대부들은 김산현의 유향소[일명 향청]를 출입하면서 김천군의 공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제작 발급 경위]
『김산향교지』에 1613년(광해군 5)에 작성된 ‘향안’이 남아 전하는데, 이것은 원래 임진왜란 전에 만들어졌다가 전란 중에 불타서 1613년에 재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뒤 1654년(효종 5)에 수안(修案)을 했고, 1672년(현종 13)에도 수안하였다. 1672년의 경우, 새로 작성된 향안에 불만을 품은 부로(父老)들이 향청으로 달려가 소란을 부리다가 김산군수 윤리(尹理)가 부로들을 구금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고 전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향안을 만들지 않다가 1887년(고종 24)에 다시 만들었다.
[구성/내용]
『김산향교지』에 전하는 향안에는 이씨(李氏) 36명, 정씨(鄭氏) 15명, 여씨(呂氏) 7명, 조씨(曺氏) 6명, 배씨(裵氏) 6명, 권씨(權氏) 5명, 최씨(崔氏) 4명, 김씨(金氏) 4명, 신씨(愼氏) 4명, 박씨(朴氏) 2명, 강씨(姜氏) 1명, 서씨(徐氏) 1명, 전씨(全氏) 1명, 변씨(卞氏) 1명 등이 등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향안에 이름이 오르려면 내외 친족 및 처족에 신분적 하자가 없어야 했다. 이렇듯 재지 사족의 공론에 따라 향안에 이름이 오를 수 있었으므로 「김산 향안」은 김천 지역의 공론을 주도하는 사대부들의 신분적 권위의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