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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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山書堂石坡親筆懸板 |
영어공식명칭 | Seokpa Autographical Hanging Board of Uisan Village School |
영어음역 | Uisanseodang Seokpa Chinpil Hyeonpan |
영어의미역 | Signboard of the Uisan Village School Written by the Great Prince Yi Ha-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죽내리 장내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권희 |
이전 | 18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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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 1981년 12월 |
제작 | 19세기 |
현 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죽내리 장내마을 |
성격 | 현판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 길이, 너비) | 120㎝[길이]|40㎝[너비] |
문화재 지정 번호 | 일반동산문화재 제5762호 |
[정의]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김여권(金汝權)의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지례향교에 내린 친필 현판.
[개설]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임진왜란 때 관란재(觀瀾齋) 김여권이 지례향교가 불타 대성전에 모신 오성(五聖)의 위패位牌)와 동방 제현(諸賢)의 위판이 불에 탈 위험에 처하자 불속으로 뛰어들어 위판을 가지고 나와 대덕면 등곡에 모셨다는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흥선대원군이 지례향교에 직접 써서 내려준 현판이다. 1862년 의성 김씨 문중에서 김여권을 제향하기 위해 경인사(景仁祠)를 세우고, 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경인사 앞에 의산서당을 건립한 후 지례향교에 있던 현판을 의산서당으로 옮겼다.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1981년 12월 일반동산문화재 제5762호로 지정되었다.
[특징]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가로 40㎝, 세로 120㎝로, 마지막에 ‘석파흥선대원군이하응(石破興宣大院君李昰應)’이란 낙관이 있다. 시의 내용은 “한 조각 구성 땅 외롭게 떨어져 있지만, 관란재가 한 일은 선비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어지러운 티끌이 선현의 위패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모두 성인들을 잘 보살폈다고 칭송했도다. 쓸쓸히 쑥대로 지붕 잇고, 초라하게 살면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니 험한 골짜기 등곡은 신령스런 땅이 되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룩한 가난한 선비에게 호화로이 지내던 벼슬아치들은 부끄럽기만 했으리라.”로, 당시 흥선대원군이 감찰사로 있으면서 잠시 등곡에 들러 그때의 감회를 읊은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주요 문화재로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된 ‘흥선대원군이하응필묵란도(興宣大院君李昰應筆墨蘭圖)’다. 그 외에 의복이나 별장, 사랑채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기는 했으나 흥선대원군의 필적을 보여 주는 자료는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필적을 잘 나타내 줄 뿐만 아니라 유행(儒行)을 찬양하는 흥선대원군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