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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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隱遺稿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Sameu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문천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백원철 |
성격 | 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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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정헌태(鄭憲泰)[1894~1974] |
저자 | 서병주(徐丙周)[1866~1943] |
편자 | 서정희(徐廷熹)|서정각(徐廷珏) |
간행자 | 서정희(徐廷熹)|서정각(徐廷珏) |
저술연도/일시 | 1943년 |
편찬연도/일시 | 1959년 |
간행연도/일시 | 1959년 |
권수 | 2권 |
책수 | 1책 |
사용활자 | 석인본 |
가로 | 19.1㎝ |
세로 | 28.1㎝ |
표제 | 三隱遺稿 |
간행처 |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용동리 이문사(以文社) |
소장처 | 서정희 가(家) |
소장처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문천리 |
[정의]
1959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서병주의 문집.
[개설]
서병주(徐丙周)[1866~1943]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였다. 특히 『삼은유고』에는 ‘서문’에서조차도 저자의 생몰 연대와 사우 관계를 언급치 않아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른 문헌을 통해 저자의 생몰 연대를 재구하여 보면 위와 같다.
또 조선 말기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전라도의 계화도로 이거하기 전인 1910년 전후에 이곳 문천리에 거주하며 한 동안 제자들에게 강학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곧 이 때에 서병주도 전우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병주는 공주군 정안면 문천리에 태어나 거주하였는 바, 이곳은 달성서씨(徐氏)의 세거지(世居地)이다.
[편찬/발간경위]
『삼은유고(三隱遺稿)』는 서병주 사후, 15년 뒤에 아들 서정각(徐廷珏) 등이 유고를 수습하여 1958년 정헌태의 서문을 받은 다음, 1959년에 서정희(徐廷熹)가 1책으로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1959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용동리의 이문사(以文社)에서 간행한 『삼은유고』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문천리의 서정희 가(家)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본 『삼은유고』는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크기는 세로 28.1㎝ 가로 19.1㎝이며, 반엽 10행 23자의 선장본이다.
[구성/내용]
문집 권1은 136제(題) 218수의 시와 만사(輓詞) 7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은거유감(隱居有感)」은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나 유유자적하는 은사(隱士)의 생활을 표현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가문은 본래 한미했으니/ 산촌에서 농사짓고 길쌈 했다네./ 비녀 갓끈 벗어버려 벼슬 욕심 멀리 했고/ 서책 가까이 하느라 불 훤히 밝혔다네./ 처사의 노래는 저 향기 풀 나는 산골까지 들렸고/ 옛 친구들의 발걸음은 대나무 사립에까지 이르렀지./ 태화산 계곡에서 산수를 즐기면서/ 한가한 마음으로 구름과 함께 돌아온다네(吾家世族本寒微 農圃山村婦織機 簪纓朁矣紅塵遠 簡冊敦之冷燭輝 處士歌傳芝术峀 故人屐到竹荊扉 泰華薪溪仁智樂 等閒心思與雲歸).”
권2는 부(賦) 1편에 이어 잡저를 실었다. 잡저에는 축사(祝辭), 혼서(婚書) 등 8편, 서(書) 1편, 서(序)에는 자서(自序) 등 6편, 기(記) 1편, 상량문 2편, 제문 2편으로 구성되었고, 부록은 만사(輓詞) 1편이며, 발문은 없다.
[의의와 평가]
『삼은유고』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생을 영위했던 은거 문인의 문학적 경향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