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67 |
---|---|
한자 | 光州牧降等-盧興俊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9년 7월 2일 - 「광주목 강등과 노흥준」 『무등일보』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광주목 강등과 노흥준」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광주목 - 광주광역시 |
관련 지명 | 무진군 - 광주광역시 |
성격 | 설화|사화(史話) |
주요 등장 인물 | 신보안|노흥준 |
모티프 유형 | 조선시대 광주의 행정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광주의 행정 명칭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세종 때 만호(萬戶) 노흥준(盧興俊)이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을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광주목(光州牧)이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문종 때에 다시 복고되었다는 이야기이다.
1989년 7월 『무등일보』의 ‘사화비록’에 기고되었다.
1990년에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1428년(세종 10)에 신보안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신보안은 관기인 소매에게 욕심이 있었으나, 만호인 노흥준의 애첩이란 것을 알고 주저하였으나 후에 정을 통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흥준이 목사 신보안을 찾아가 목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에서 구타하고 욕설을 하였다. 그리고 신보안은 얼마 후 사망하였다. 조정에서 감찰을 보내 신보안이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였고, 노흥준이 미풍양속을 어기고 국법을 무시한 처사로 판정하고 처벌하였다. 그리고 노흥준의 가산을 몰수하고, 노흥준의 가족을 광주에서 추방하였다. 이 사건으로 1430년(세종 12)에 광주목은 무진군으로 격하되었다. 다시 광주목으로 복고된 것은 1451년(문종 1)으로 21년간 강등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호남의 거읍(巨邑)인 광주목이 무진군으로 강등된 사건과 다시 복고된 내력에 관한 이야기로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화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