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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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克中 |
영어공식명칭 | Gwon Geugj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가계]
권극중(權克中)[?~142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진(權賑), 할아버지는 권흥(權興)이다. 아버지는 봉렬대부(奉列大夫)·지영암군사(知靈巖郡事) 권삼(權參), 형은 권극화(權克和)이다. 부인은 민씨(閔氏)이다.
[활동 사항]
권극중은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1411년(태종 11) 4월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곧이어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세자좌정자(世子左正字)에 임명되었다. 권극중은 1415년 2월 전라도 도사(都事)를 지내고 있었는데, 겨울 3개월 동안 감옥 죄수에 관한 현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권극중을 중앙으로 소환해 그 연고를 묻고자 했는데, 권극중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권극중은 이 죄로 같은 해 3월에 외방(外方)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권극중은 이후 사면되어 복직되었던 듯하다. 권극중은 1421년(세종 3) 9월에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있으면서 사신에게 영칙(迎勅)[황제가 보낸 칙사를 맞던 일]하는 의식을 물어보기도 하였다. 1422년 사망하였고, 광주(光州)에 장사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권극중의 부인 민씨는 권극중의 무덤 곁에서 여막을 짓고 삼년상을 마친 후에도 애통해 하는 것이 예를 넘었으며, 여승이 되어 묘 곁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정려(旌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