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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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居厚妻鄭氏 |
영어공식명칭 | Jeong cl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바른 |
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고거후 처 정씨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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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44년 - 정씨 고씨삼강문(高氏三綱門)에 등재 |
사당|배향지 | 고씨삼강문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광산(光山)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열녀.
[가계]
정씨(鄭氏)[?~1597]의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충의위 정희연(鄭希淵)이다. 정씨는 유학(幼學) 고거후(高居厚)의 아내로, 고경명(高敬命)의 조카며느리이다.
[활동 사항]
정씨는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고거후와 혼인하였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왜적이 남편을 죽이고 정씨를 핍박하자 "이미 남편이 죽었으니 어찌 너를 따르겠는가!" 하고 남편의 주검을 안고 왜적을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다가 결국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旌閭)하였는데, 1617년(광해군 9)에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지금의 조정에서 정문을 세웠다[今上朝㫌門]"라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 정려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훈과 추모]
1844년(헌종 10) 정씨는 고경명을 비롯한 장흥고씨(長興高氏) 일가 7명의 충절을 기리는 고씨삼강문(高氏三綱門)에 등재되었다.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정문(旌門)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