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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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瑞石山贈高君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95년 - 이명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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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45년 - 이명한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이명한| |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이명한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개설]
「등서석산 증고군섭(登瑞石山贈高君涉)」의 저자 이명한(李明漢)[1595~1645]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천장(天章), 호는 백주(白洲)이다. 1616년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 전적, 공조좌랑 등에 제수되었다. 인목대비 폐모론이 있어났을 때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병조좌랑, 교리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경연시독관, 어사 등에 제수되었다. 이괄의 난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하였고, 이후 병조참의, 형조참의, 좌승지, 대사간, 대사성, 부제학 등을 지냈다. 1639년 도승지를 거쳐 1641년 대사헌이 되었다. 1643년 이경여(李敬輿)·신익성(申翊聖) 등과 함께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가 억류되었다. 이듬해 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어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저서로는 『백주집(白洲集)』이 있다.
[구성]
「등서석산 증고군섭」은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이다.
[내용]
등서석산 증고군섭(登瑞石山贈高君涉)[서석산에 올라서, 고군섭에게 바치다]
서석문명구(瑞石聞名久)[서석산 명성 들은지 오래인데]/ 금래발흥신(今來發興新)[이제야 오르니 새 흥취 오르네]/ 천청십일우(天晴十日雨)[오랜 비에 하늘 맑게 개니]/ 반득일생친(伴得一生親)[일생의 친구와 짝 하였지]/ 낙일서임해(落日西臨海)[저문 해 서쪽 바다를 대하고]/ 귀운북망진(歸雲北望秦)[돌아가는 구름 북쪽을 바라보네]/ 중심명유약(重尋明有約)[다시 찾겠다는 분명한 약속]/ 유어계화춘(留語桂花春)[계화 핀 봄에 남겨 놓는다]
[특징]
「등서석산 증고군섭」은 이명한의 문집인 『백주집(白洲集)』 제5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있는 고군섭(高君涉)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고경명의 손자인 고부천(高傅川)[1578~1636]이다. 고부천의 문집인 『월봉집(月峯集)』 제6권 부록 『제공증유시(諸公贈遺詩)』에도 「등서석산 증고군섭」이 수록되어 있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등서석산 증고군섭」은 이명한 시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이명한과 고경명의 손자인 고부천과의 교유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