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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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病棲瑞石小龕題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82년 - 정홍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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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50년 - 정홍명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정홍명 |
[정의]
조선 후기 학자 정홍명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에 머물며 지은 한시.
[개설]
「병서서석소감제벽(病棲瑞石小龕題壁)」을 지은 정홍명(鄭弘溟)[1582~1650]의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 또는 삼치(三癡),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아버지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고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강항(柳强項)의 딸이다. 정홍명은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에게 수학하였다. 1616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예문관검열, 이조정랑, 소모사(召募使), 함양군수, 대제학 등을 지냈다. 저서로 『기암집(畸庵集)』, 『기옹만필(畸翁漫筆)』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병서서석소감제벽」은 『기암집』 제8권에 실려 있다. 제목의 "병들어 서석에 살면서[病棲瑞石]"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정홍명이 벼슬에서 물러난 말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홍명은 작품 안에서 자연에 깃들어 살며 한가로이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동시에 건강 상태를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어 말미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
「병서서석소감제벽」은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내용]
병서서석소감제벽(病棲瑞石少龕題壁)[병들어 서석에 살면서 작은 감실 벽에 쓰다]
형신적막기산서(形神寂寞寄山棲)[몸과 마음은 고요히 산에 깃들고]/ 탄재상두수권서(攤在床頭數卷書)[책상 위에는 몇 권의 책만 펼쳐 두었네]/ 한반노승공죽반(閑伴老僧供粥飯)[한가로이 노승과 죽을 먹으니]/ 차옹생활불구여(此翁生活不求餘)[이런 삶에 더할 것이 또 있으랴]
[의의와 평가]
「병서서석소감제벽」은 『기암집』 제9권에 실린 「서석산부」와 더불어 17세기의 대표적인 무등산권 문학작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