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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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甲寅初夏遊瑞石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08년 - 송달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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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58년 - 송달수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854년 - 송달수가 「갑인초하 유서석산」을 지음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송달수 |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송달수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개설]
「갑인초하 유서석산(甲寅初夏遊瑞石山)」을 지은 송달수(宋達洙)[1808~1858]의 호는 수종재(守宗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아버지는 송흠학(宋欽學)이고, 어머니는 정치환(鄭致煥)의 딸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에게 수학하였다. 경연관(經筵官), 부호군(副護軍), 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학문이 깊어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저서로 『수종재집(守宗齋集)』 13권이 있다.
「갑인초하 유서석산」은 송달수가 1854년[갑인년] 초여름에 무등산[제목에서 서석산은 무등산의 이칭]을 유람하면서 우리나라 남쪽의 으뜸으로 꼽히는 산을 찾은 감회를 노래하였다. 송달수는 무등산 유람에 대해 30년을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면서 어진 이가 산을 좋아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된 기쁨으로 표현하고 있다. 「갑인초하 유서석산」은 『수종재집』 제1권에 실려 있다.
[구성]
「갑인초하 유서석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갑인초하 유서석산(甲寅初夏遊瑞石山)[갑인년 초여름 서석산을 유람하다]
임문서석천남주(稔聞瑞石擅南州)[익히 듣던 서석은 남녘 고을에 으뜸이니]/ 삽재경영차일수(卅載經營此日酬)[삼십 해 살아온 삶 오늘에야 보상받네]/ 하루요평생의혈(罅漏遙坪生蟻穴)[틈이 생겨 먼 들판에 개미굴 같은 게 생기고]/ 총환열수출오두(叢環列峀出烏頭)[빙 두른 봉우리는 까마귀 머리처럼 드러나네]/ 적성곤후위강진(積成坤厚爲壃鎭)[두터운 땅이 쌓여서 경계의 진영이 되었고]/ 종득인령좌국휴(鐘得人靈佐國休)[사람이 모이고 모여 나라의 기쁨을 도왔다네]/ 자괴심무인자요(自愧心無仁者樂)[스스로 인자의 좋아함이 없던 게 창피했는데]/ 우탐기관주한유(偶探奇觀做閒遊)[우연히 기이한 경치 찾아 한가로이 유람하였네]
[특징]
「갑인초하 유서석산」은 '개미굴', '까마귀 머리' 등의 재치 있는 표현 방법으로 무등산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독특하다.
[의의와 평가]
「갑인초하 유서석산」은 시를 통해 1854년 당시의 무등산에 대한 인식과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또한, 산이 높기 때문에 주변의 산들이 개미굴처럼 작게 보였다고 표현한 것이나, 민둥산의 모습을 까마귀 머리로 표현한 것은 기암괴석이 많은 무등산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노래하였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