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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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興洞風水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수 |
전구간 | 문흥동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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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 대한 풍수 해석.
[개설]
문흥동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으로 노고지리산에서 도동고개를 거쳐 매봉[삼각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남쪽 자드락에 자리한다.
[명칭 유래]
『한국지명총람』 문흥동에 “문산과 신흥의 이름을 따서 문흥리라 하여 서방면에 편입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문흥동은 민뫼[문산], 동쪽 평교(平橋), 서쪽 송정(松亭)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고지리산에서 도동고개를 거쳐 매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남쪽 자락에 자리하였다.
[현황]
독산[민뫼]은 대문산마을이고, 제주양씨가 모여 살았다. 소문산마을 송정은 경주김씨 집성촌이다. 평교 담양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는 교통의 요지로 도동[도둔]고개 남쪽 원촌(院村)이었다.
문산마을 북동쪽 ‘석시낭[석숭한밭]골’은 중국 진나라 때 석숭과 같은 부자가 나올만한 명당터라 칭하였다고 한다. 석시낭골 동편 담양간 국도변에 각화동 농산물도매장, 반대편 외등기와 굽던 터에는 광주교도소가 들어섰다.
서방천변 평교는 예로부터 ‘배 형국’으로 짐대를 세워 돛대로 여겼으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장마철 범람에 대비한 염승(厭勝)의 의미도 깃들어 있었다. 2개 솟대는 문화육교 아래 문흥천주교회 당산나무 옆, 호남고속도로 용지에 수용된 북쪽에 각각 세웠다. 동광주나들목, 현 서희아파트 터가 된 ‘장승배기’에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도동고개[猪院峙] 밑으로 이정표의 역할과 함께 호열자 출입에 따른 전염병[災厄]을 막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