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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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의 건국으로부터 1392년 멸망하기까지의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고려 시대 하동 지역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료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관련된 몇 건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진주목조에 진주목의 속읍 아홉 곳 가운데 하나로 하동군에 관한 간략한 연혁이 나올 뿐이다. 고려 시대에 하동군과 같은 속읍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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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서 구재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재봉의 전설」은 고려 후기에 구자산(龜子山) 정상의 구재봉에 살던 정안(鄭晏)[?~1251] 장군의 동생 정희령 장군이 백마와 내기를 해서 백마가 화살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백마를 죽였는데 알고 보니 화살이 백마보다 더 늦게 도착하여 후회했다는 신이담이다. 2002년 적량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적량면지』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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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중기 정안(鄭晏)이 쌓았다는 정안봉 산성 남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남성(南城)·성내·성천(城川)이라 하였다. 마을 주변에 있는 여섯 개 고개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재내라 하였다가 잔내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재내의 ‘재’가 보통 성(城) 또는 고개[峴]를 의미하기에 정안성 또는 여섯 고개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전해 오는 듯하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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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상성에 있는 영일 정씨 동성 마을. 상성은 성천리에서 가장 윗동네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성천리는 본디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외부로 통하는 여섯 개의 고개가 있어, 고개 안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재내[峙內] 또는 잔내라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할 때 행정 공무원이 재내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른 끝에 ‘재 성(城)’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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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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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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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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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고려 명종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다. 형은 정윤당(鄭允當)과 우복야를 지낸 정진(鄭稹)이며, 사위는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이다. 아들은 참지정사를 지낸 정안(鄭晏)이다. 정숙첨(鄭淑瞻)은 벼슬이 여러 번 올라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고종 때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거란의 금산왕자(金山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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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화경(和卿), 초명은 정분(鄭奮). 할아버지는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며, 아버지는 평장사를 역임한 정숙첨(鄭淑瞻)이다. 무인집정인 최우(崔瑀)와 처남 매부의 관계이다. 정안(鄭晏)은 총명하여 젊어서 과거에 급제했으며, 음양·산술·의약·음률에도 두루 정통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진양(晉陽)의 수령이 되었으나 연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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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적량면·양보면에 걸쳐 있는 산. 고려 시대 무인 정권기에 재상을 지낸 정안(鄭晏)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정안은 당시 집권자인 최우(崔瑀)의 처남으로 진양의 수령이었다가 고향인 하동으로 낙향해 노모를 모셨으며, 정안봉[448m] 정상에 정안봉 산성을 쌓았다. 하동군의 북동쪽 산지인 우방산·두방산에서 옥산을 거쳐 남남서 방향으로 길게 발달한 산줄기가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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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봉수대. 정안봉 봉수를 축조하였다고 알려진 정안(鄭晏)[?~1251]은 하동 정씨(河東鄭氏)로서 부친 정숙첨(鄭叔瞻)과 조부 정세유(鄭世裕)는 관직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정안은 진양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모친이 연로하다며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정안봉 봉수가 있는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에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정안봉 봉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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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을 축성한 정안(鄭晏)[?~1251]은 하동 출신으로서, 고려 후기 무신 정권기에 참지정사를 지냈다. 몽골족이 침입해 국토를 유린하는 상황에서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를 도운 애국자였으며, 사재를 들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판각할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정안봉 산성은 정안이 1216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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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하동의 토성(土姓)이다. 따라서 하동 정씨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동 정씨는 통일 신라의 군현 체제에서 촌주 세력으로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신라 말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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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