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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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한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골짜기가 많은 지역, 혹은 골짜기가 큰 지역이라고 하여 ‘대곡’이라 부르는데, 『진양지(晉陽誌)』에 의하면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옥종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직선거리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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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금속·도기·나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기념물.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된다. 비는 흔히 비석이라고 하듯이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비(碑)[위가 네모난 형태]와 갈(碣)[위가 둥근 형태]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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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1. 16세기 하동군의 유학자를 출생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선 가장 앞선 시기의 인물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를 들 수 있다. 조지서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로 있을 때 스승의 직책을 맡아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조지서는 연산군이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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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남명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록(遊頭流錄)」은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은 58살 되던 해인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조식의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젊어서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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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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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산해(山海)·방장산인(方丈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조안습(曺安習)이고,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조영(曺永)[1428~1511]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조언형(曺彦亨)[1469~1526]이다. 증조할머니는 강성 문씨(江城文氏)로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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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당(知足堂)·충헌(忠軒). 5대조 할아버지는 문하지후(門下祗侯) 조순(趙淳)이며, 고조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내고 가흥백(嘉興伯)에 봉해진 조석견(趙石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중(殿中) 조익(趙益)이며, 할아버지는 사온시 직장(司醞寺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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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신 또는 진리로 표현되는 절대적인 존재자를 숭배하며 근본적이라 믿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종교는 고대 무속 신앙으로부터 출발하여, 삼국 시대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수용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을 정도로 크게 성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국교가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서양의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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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지서(趙之瑞)의 묘비. 조지서[1454~1504]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백부(百符), 호는 지족정(知足亭) 또는 충헌(忠軒)이다. 증조부는 조익(趙益)이며, 조부는 직장(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조찬(趙瓚), 어머니는 생원 정참(鄭叅)의 딸이다. 누이가 남명 조식(曺植)의 할머니이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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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부 오천 정씨의 정려각. 오천 정씨(烏川鄭氏)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증손인 생원 윤관(允寬)의 딸이다. 남편인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한 뒤 홀로 젖먹이 두 아이를 훌륭히 키웠다. 신주(神主)를 등에 지고 초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어렵고 험난한 일을 겪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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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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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