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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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경상남도 하동의 독립운동가들이 제작, 배포한 독립 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는 일명 하동독립선언서라고도 불리는데, 하동 지역 인사 12명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3·1 운동 당시 하동군 내에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한 장뿐인데, 독립운동가 박치화(朴致和)가 살던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고택 처마 밑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3·1 운동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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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 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하동 지역에서는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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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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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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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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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희근(鄭禧根)은 1881년(고종 18)경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정낙영, 이범호 등과 함께 남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해 「대한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고 군중 동원을 마친 뒤, 대치리에 있는 금양면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정희근 등은 오전 11시부터 “대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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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정기룡(鄭起龍)의 생가 터.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仲坪里) 당사곡(堂沙谷)과 중방동(衆芳洞) 등 일대는 매헌(梅軒) 정기룡[1562~1622]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청소년 시절에 학문을 닦고 무예를 연마한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상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왜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