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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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대치에 있는 진주 정씨 동성 마을. 지난날 마을 뒤 금오산[849m] 자락의 큰 고개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큰재 또는 한재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을 한자로 통일하면서 큰 고개라는 뜻의 대치(大峙)로 바꾸었다. 약 400년 전 진주 정씨 정대수(鄭大壽)가 진주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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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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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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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곤양군[사천시 곤명면, 곤양면, 서포면과 하동군 진교면, 금성면, 금남면에 있던 지역]에서 정두엽의 처 이씨에게 발급한 호적 관련 문서. 1675년(숙종 1) 곤양군(昆陽郡)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정두엽(鄭斗燁)의 32살 때 준호구(準戶口)로, 거주지는 곤양군 초량면(草梁面) 추동(楸洞)으로 되어 있다. 정두엽의 본관은 진주이며, 아버지는 정희협(鄭希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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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평중(平仲), 호는 농헌(聾軒). 9대조 정대수(鄭大壽)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피해 곤양의 남쪽 금오산(金鰲山)에 옮겨 와 살았다. 아버지는 정필화(鄭必華)이고, 어머니는 홍세의(洪世儀)의 딸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부인은 조성우(曺成宇)의 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이다. 정재권(鄭在權)은 1796년(정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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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정자우·정장·정헌을 시조로 하고 정대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진주의 토성인 진양 정씨는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네 계열은 신라 말을 전후하여 조상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 간의 세계를 밝힐 수 없다. 진양 정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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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입향조인 오봉공 정대수의 현손인 정국형(鄭國亨)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은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는데, 이러한 법도를 세 아들인 정서구, 정순구, 정우구에게 물려주었다. 후손들은 처사(處士) 정국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 첨모재(瞻慕齋)를 산소 곁에 건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