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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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沂陽 書院 |
영어공식명칭 | Giyang Private Confucian Academy|Giyang Seow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있었던 서원.
[개설]
기양 서원(沂陽書院)은 주세곤(周世鵾)·주선원(周善元)·주각(周珏)·주재성(周宰成)·주도복(周道復) 등 다섯 사람을 배향하기 위하여 1701년(숙종 27)에 창건되었다. 주세곤은 문무를 겸비한 학자이다. 주세곤은 신구(慎口), 신신(慎身), 신심(慎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좌우명을 성찰한다는 의미로 호를 성재(省齋)라 하였다. 주선원은 주세곤의 증손자로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학식이 깊고 언행이 독실하였다. 장현광은 주선원을 ‘청은 군자(淸隱君子)’라 칭송하였다. 주각은 주선원의 손자로 효자라 칭송을 받았다. 지극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서 통선랑 사헌부 지평(通善郞司憲府持平) 벼슬이 증직되었다.
주재성은 주각의 둘째 아들이며, 호는 국담(菊潭)이다. 성리학 서적을 탐독하고 실천에 힘썼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정희량(鄭希亮)의 난 때 의병을 모아 참전하였다. 그 후 향리에 돌아와 서실을 짓고 작은 연못을 파고 ‘국담’이라 명명하고 학구에 전심했다. 주도복은 주재성의 장자이다. 1728년(영조 4)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켜 이인좌의 난적을 토벌할 때에 부친과 함께 참여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연명시키는 등 효성도 뛰어났다.
[설립 목적]
기양 서원은 주세곤, 주선원, 주각, 주재성, 주도복 등 다섯 사람을 배향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변천]
1701년 창건 후 160여 년이 지난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71년 기양 서원 연못 남쪽에 있는 충효사(忠孝祠)가 중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기양 서원의 향사일은 4월 상정(上丁)이다. 상주 주씨(尙州周氏) 문중[주태근]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황]
본래의 기양 서원 자리는 터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함안 무기 연당(咸安舞沂蓮塘)의 동북쪽 뒤편이다. 함안 무기 연당 내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풍욕루(風浴樓)·영정각(影幀閣)·충효사·하환정(何換亭)이 있다. 함안 무기 연당 내에는 ‘기양 서원 중건 기념비(沂陽書院重建記念碑)’가 있다. 함안 무기 연당은 중요 민속 문화재 제208호이다. 기양 서원이 배향하는 유학자들 중 주재성의 시문집을 판각한 『국담 문집』 책판(菊潭文集冊板)은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4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