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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차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42
한자 延安 車氏
이칭/별칭 남산밑 차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6세기 - 차사대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입향
본관 연안 - 황해도 연안군
입향지 문수당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연안 차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리 지도보기|장안면 석포리지도보기|향남읍 상신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차효전
입향 시조 차사대

[정의]

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사대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연안 차씨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류차달(柳車達)의 맏아들 차효전(車孝全)이다. 류차달의 5대조는 신라의 관료 차승색(車承穡)인데, 정변으로 인해 성을 바꾸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공신 류차달의 본성(本姓)이 '차(車)'라 하여 맏아들 차효전에게는 성을 '차'로 하게 하였고, 동생 류효금(柳孝金)에게는 '류(柳)'를 계속 성으로 쓰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차효전의 후손은 연안 차씨가 되고, 류효금의 후손은 문화 류씨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화성 지역 연안 차씨는 세조 대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다가 순절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녹훈된 차운혁(車云革)을 파조로 하는 강렬공파(剛烈公派)에 속한다. 화성 지역 강렬공파는 18세기에 차진성(車振聲)과 차진성의 아들 차도항(車道恒)이 무관직을 역임하며 가문의 부흥을 이루었다. 이후 1821년(순조 21)에 충훈부로부터 공신의 후손임을 공인받고 충훈부 등급을 발급받았다.

[입향 경위]

연안 차씨는 16세기 무렵부터 화성 지역에 세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입향조는 차운혁의 증손 차사대(車思戴)이다. 입향조 차사대가 수원 문수당(文殊堂)으로 이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수당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일대이다. 또 차사대와 아들 차상의 묘가 화성시 봉담면에 있다. 화성 지역 연안 차씨는 이후 화성시 정남면 괘랑2리 남산밑에 종가를 두고 각골, 빽골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현황]

연안 차씨 화성 지역 동성 마을은 1950년에 정남면 괘랑리[62세대], 장안면 석포리 버들마을[32세대], 향남읍 상신리[20세대]에서 확인되었다.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382세대 1,642명의 연안 차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2,644명이 확인되었다.

[관련 유적]

연안 차씨 관련 유적으로는 화성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차운혁 충신정려문이 있다. 1860년(철종 11)에 차운혁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강렬이란 시호와 함께 내려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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