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62 |
---|---|
한자 | 李承宰 |
영어음역 | Yi Seungjae |
이칭/별칭 | 좌경(佐卿),창주(蒼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좌경(佐卿), 호는 창주(蒼洲). 아버지는 이강년(李康秊)이다.
[활동 사항]
이승재(李承宰)[1881~1917]는 문경에서 태어났다. 단발령 이후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부친을 좇아 의병에 가담하여 서상업(徐相業) 등과 부친을 보좌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의병을 다시 일으킨 부친을 좇아 종군하였다. 이후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 참전하면서 부친의 곁은 떠나지 않았고, 1908년(순종 2) 5월 청풍성 전투에서 크게 패한 뒤 부친이 체포되고 순국한 후로는 원수 갚을 일만 생각하여 사생을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이 이끌던 호좌의진을 계승한 김상태(金尙台)와 항일 전선에 나섰으나, 김상태마저 순국하자 한양리(韓良履)와 팔도를 다니면서 죽기로 다짐한 인사들을 규합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투옥되었으나 탈옥하였다. 그 뒤 국내에서 재기를 꾀하던 중 적의 정탐꾼[敵偵] 일진회원 박준호(朴準鎬)의 음독 유인으로 화를 입고 대전의 박용규(朴龍奎)의 집에서 치료하였으나 피를 토하고 며칠 뒤에 숨졌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