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146 |
---|---|
한자 | 場基里 |
영어공식명칭 | Jangg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명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장기(場基)’라는 지명이 나오게 된 안성 장터는 현재 하천으로 변해 버린 효자촌(孝子村) 앞 개울 건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7년 대홍수가 일어나 안성 장터는 모두 떠내려 가는 참상을 당하였고, 장터는 하천으로 변해 쓸모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이에 황무지였던 비들목 건너편 빈들[廓坪]에 면사무소[현재 주민 자치 센터]를 비롯하여 각급 기관을 신축하고 장옥(場屋)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인가(人家)가 생기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날의 신촌(新村)과 시장(市場)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장기리는 본래 금산군에 속한 지역으로, 1674년(현종 15) 무주현(茂朱縣)이 무주 도호부(茂朱都護府)로 승격될 때 편입되어 이안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로 개설하였다. 당시 장기리에는 산미촌, 비들목[鳩項], 대밭골[竹田], 배냉기[梨木], 이화동(梨花洞) 등이 속하였다. 그 후 장기 1리와 장기 2리로 행정리가 구획되었고, 1961년 장기 1리에 속하던 중산 마을을 장기 2리로 하고, 종전의 장기 2리였던 이목 마을은 장기 3리로 하였다. 1972년에는 종전의 3개 행정리에서 신촌리, 시장리[비들목 포함], 중산리, 하이목리, 상이목리 등 5개 리로 분리되었다. 신촌 마을, 시장 마을, 비들목 마을, 하이목 마을, 상이목 마을, 홍문안 마을, 하부대 마을, 중산 마을, 굴곡 마을 등 9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환경]
장기리는 안성면의 중앙 지역을 점유하고 북쪽은 구리향천을 사이에 두고 사전리와 인접한 높고 평탄한 지형이다. 장기리의 남북을 관통하는 통영 대전 고속 도로 서쪽으로 매방제산[776.1m]의 북쪽 산록인 안면산(安眠山)이 있고, 그 동쪽으로 안성면의 중심지가 위치하고 있다.
[현황]
장기리는 동쪽은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공정리, 남쪽은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서쪽은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북쪽은 구리향천을 사이에 두고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와 접한다. 2017년 1월 현재 면적은 7.25㎢이며, 신촌리, 하이목리, 상이목리, 중산리의 4개 행정리에 673가구, 1,413명[남 728명/여 68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산 마을에는 조선 인조(仁祖) 때의 예학자(禮學者) 초려(草麗) 이유태(李惟泰)가 1656년(효종 7)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덕유산 아래 산미촌에 터를 잡고 산수와 더불어 벗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전하는 유허비(遺虛碑)가 있다. 또한 중산 마을 뒷마을인 골고리(骨古里)[골곡]에는 옛적 어떤 도사가 신선이 되기 위해 선서(仙書)를 읽었다는 책바위 전설이 전한다. 신촌 마을은 본래 빈들로 불리던 황무지였으나 1917년 대홍수 이후 개척되어 안성 시장과 같이 시가지를 형성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안성면의 행정 중심지로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를 비롯하여 안성 초등학교, 안성 농협, 무주 경찰서 안성 지구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