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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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時術齋 |
영어공식명칭 | Sisulj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단천로 135[읍내리 26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선아 |
건립 시기/일시 | 1849년 - 시술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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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70년 - 시술재, 무주 향교 동쪽으로 확장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1922년 - 시술재, 무주 향교 내로 이전 |
현 소재지 | 시술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단천로 135[읍내리 265-1] |
원소재지 | 시술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
성격 | 학문 기관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문 기관.
[개설]
1846년(헌종 12)에 부사로 부임한 최원은 고을 선비들과 상의하여 1849년(헌종 15)에 관아의 북쪽에 터를 잡아 시술재(時術齋)를 창건하였다. 재사(齋舍)를 건립하기 위해 돈 600여 냥과 약간의 관비를 모으고 3만 치전(治田)에서 세수곡(勢收穀) 20곡(斛)과 2만 치전에서 8,000전을 양사(養士)의 자금으로 삼고 3년 동안 경영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최원은 동편을 ‘경업당(敬業堂)’, 서편을 ‘변지당(辨志堂)’이라고 편액을 지었다. 선비들이 1년에 이경(離經)하여 뜻을 분별하고 3년에 경업(敬業)하고 낙군(樂群)하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최원이 쓴 『시술재기(時術齋記)』에 의하면, 향교(鄕校)가 공자(孔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변화하여 선비들이 학업을 익힐 수 있는 곳이 없게 되었기에 공부에만 전념토록 할 수 있도록 하재문의 건의로 학문을 연마할 수 있는 건물을 건립하였다. 최승항(崔承恒)·박춘병(朴春炳)·박제봉(朴齊鳳) 등이 경비를 모았으며 하맹조(河孟朝)·이재근(李在根)이 감독하는 등 지역민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 시술재가 건립된 이후에 무주에서도 유학이 크게 진작되어 무주 출신의 과거 합격자들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위치]
시술재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265-1번지[단천로 135]에 있다.
[변천]
무주 관아의 뒷편 아래에 창건하였는데 민가(民家)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학문 연마의 장소로 적당하지 않아서 홍종화(洪鍾華) 부사가 1855년(철종 6)에 향로봉(香爐峰) 아래, 적탄(赤灘) 위에 있던 송정(松亭) 아래로 이건하였다. 1870년(고종 7)에 김석근(金奭根) 부사의 주도로 선비들이 보다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무주 향교(茂朱鄕校)의 동쪽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1922년에 무주 향교 내 양사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의의와 평가]
무주의 유학을 육성하고 유생을 양성하기 위해 무주 지역민의 후원으로 건립된 지방 교육 기관으로 유학을 진흥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