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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67
한자 河在萬
영어공식명칭 Ha Jaeman
이칭/별칭 자범(子範),운파(雲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하재만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하재만 사망
출생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성격 자선가|유학자
성별
본관 진주

[정의]

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자선가.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자범(子範), 호는 운파(雲波).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하진규(河鎭圭)이다.

[활동 사항]

하재만(河在萬)[1832~1909]은 1832년(순조 32)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높고 엄숙하였으며, 강직하고 씩씩하면서도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으며, 형제간에 서로 화목하게 지내 우애의 본보기가 되었다. 학자로서도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필법이 뛰어났는데, 왕희지(王羲之) 서법에 능하였고, 학문은 송대의 대학자 주돈이(周敦頥)와 정호(程顥), 정이(程頥)의 정주학(程朱學)을 계승하였다. 병(丙)·무(戊)[연대 미상] 두 해에 흉년이 들자 곡식을 내어 구휼하였다. 고을 관아에서 하재만의 행실을 여러 차례 추천하여 종2품 가선대부에 올랐다. 1909년(순종 3)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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