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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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鳳祥 |
영어공식명칭 | I Bongsang |
이칭/별칭 | 의소(儀韶),설천(雪川),문경(文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활동 시기/일시 | 1722년 - 이봉상 무주 설천에 은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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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58년 - 이봉상 대사헌 겸 좨주 증직 |
추모 시기/일시 | 1858년 - 이봉상 문경 추시 |
추모 시기/일시 | 1860년 - 이봉상 무주 설천사 주향 |
거주|이주지 | 무주 도호부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완산 |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활동 사항]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다 뛰어나 고금(古今)의 서적들을 모두 암기하고 마음속에 새겼다. 특히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장횡거(張橫渠), 주희(朱熹) 등 사현(四賢)의 경사(經史)를 익숙하도록 읽었다. 아버지 이기지가 잡혀 가면서 부채에 ‘충효(忠孝)’ 두 글자를 써서 주니 죽을 때까지 교훈으로 삼고 가슴속에 새겼다. 효성이 지극하여 여러 차례 효자로 정려(旌閭)하려 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호인 ‘설천’은 무주 설천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학문과 저술]
『독서 기의(讀書記疑)』 18권과 『설천초(雪川抄)』 12권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1860년(철종 11)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설천사(雪川祠)에 주향(主享)하였다. 1858년(철종 9) 대신들의 추천으로 대사헌(大司憲) 겸 좨주(祭酒)에 증직되었고, 문경(文敬)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