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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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壯春 |
영어공식명칭 | I Jangchun |
이칭/별칭 | 이병렬(李秉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선아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이장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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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이장춘 무주 덕유산에서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5월 - 이장춘 남원군 이문성 동북 방면에서 일본 헌병과 교전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0월 - 이장춘 경부선 이원역 습격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4월 30일 - 이장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지례 헌병대와 격전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5월 16일 - 이장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이장춘 건국 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장춘 건국 훈장 추서 |
출생지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이장춘(李壯春)[1888~1910]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병렬(李秉烈)이라고도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며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 항쟁이 일어났다. 이장춘은 1906년 10월쯤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200여 명의 의병을 이끌면서 전라북도 무주군과 남원군, 장수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충청북도 영동군과 옥천군 등지에서 활약하였는데, 당시 무주 주재소와 장수군 장수읍 등을 습격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6년 말 경상남도 거창군과 합천군, 함양군 안의 등지의 의병을 규합하여 노응규(盧應奎)[1861~1907]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순종 3) 1월 함양군 안의 북쪽으로 이전하고 5월 남원군 이문성(里文城) 동북 방면에서 일본 헌병들과 교전 끝에 이를 격파하였다. 이 해 8월 영남 지구의 의병 대장 문태서(文泰瑞)와 함께 충청북도 영동군·옥천군 등지로 이동하여 활약하였으며, 10월에는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을 습격하여 일본 헌병 3명을 납치하였다. 1910년 4월 30일 7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지례 헌병대와 격전을 벌여 28명이 전사하고 8명이 부상당하는 큰 참사를 당하였다. 그후 의병을 수습하여 1910년 5월 16일 무풍면 현내리 흑석동에서 경상북도 성주 수비대의 기습을 받고 격전을 벌이다 동료 10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