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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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凌幹 |
영어음역 | Yi Neungg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윤진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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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시 |
성별 | 남 |
생년 | 미상 |
몰년 | 1357년 |
본관 | 영천 |
대표관직 | 좌정승영도첨의사|영천부원군|문하시중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활동사항]
충선왕이 충숙왕에게 선위하고 원나라에 있을 때 반전별감(盤纏別監)으로 왕을 모셨다. 그때 함께 일을 맡은 자들은 모두 치부하였으나 홀로 청고한 생활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에 귀양을 가게 되자 역졸을 시켜 금을 바치게 하여 왕과 호종신(扈從臣)의 옹색을 면하게 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밀직부사로 충선왕의 재궁(梓宮, 장례를 치르기 전의 죽은 임금이 사용할 관곽)을 모시고 귀국하였는데, 이듬해 원나라가 고려에 성(省)을 두려 하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김이(金怡)·전영보(全英甫) 등과 함께 원제(元帝)에게 주청하여 중지하게 함으로써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328년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있을 때 원에 가서 문종의 즉위와 개원(開元)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1330년에 충혜왕이 즉위하자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고, 이어서 사신으로 원에 다녀왔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정승에 올랐고, 이듬해 정승으로 성절사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 해에 조적(曺頔)의 난이 일어났는데,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다시 1등공신에 책록되고 철권(鐵拳)을 하사받았다. 1348년(충목왕 4)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졌다.
1351년에 공민왕이 즉위하자 또 영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좌정승영도첨의사(左政丞領都僉議事)에 올랐으며,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충선왕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일찍이 왕의 총희를 백문거(白文擧)와 함께 한 사람씩 물려받았으나 별실에 두고 한 번도 가까이하지 않았으므로 왕이 탄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