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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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梁氏 |
영어의미역 | Namwon Y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양우량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남원양씨는 양우량(梁友諒)을 시조로 하는데 양우량은 본래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하는 제주양씨였으나, 757년(경덕왕 16) 나라에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진 후 후손들이 양우량을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삼아 분적하였다고 한다. 논산에 입향한 남원양씨 인물로는 조선 중기 무신 양함(梁諴, 1564~1592)이 있다. 양함은 임진왜란 때 함창현감으로 출전하여 전사한 인물로 사후 300여 년이 지난 1886년에 충절을 인정받아 정려를 내려 받았다.
[입향경위]
입향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입향 경위와 시기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남원양씨의 대표적인 인물인 양함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양함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탐금대에서 악전고투 끝에 최후까지 선전하였지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였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으로 시신조차 거두지 못했고, 초혼장으로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에 안장하였으며, 이 때 나라에서는 국사를 보내어 신위지지를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약 300여년 후인 1886년에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상월면 신충리에 그의 정려가 건립되었다.
이를 미루어 그의 후손들이 이후 세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점차 성장하면서 현재의 남원양씨 세거지인 상월면 신충리로 이거한 것으로 보여진다. 1920년에 간행된 『조선의 성』에서도 남원양씨의 세거지로 현재의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현황]
1995년 기준으로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양씨는 논산읍에 94가구를 비롯하여 상월면 54가구, 연무읍 48가구, 성동면 38가구, 강경읍 37가구, 광석면 32가구, 은진면 29가구 등 총 416가구로 조사되었다.
[관련유적]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양함의 사우(사당)인 신충사와 양함 정려가 있고,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에 양함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