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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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楊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
집필자 | 이근호 |
본관 | 청주 양씨 관적지 - 충청북도 청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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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청주 양씨 입향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
세거|집성지 | 청주 양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
세거|집성지 | 청주 양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
세거|집성지 | 청주 양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
세거|집성지 | 청주 양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
재실 | 길명사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
성씨 시조 | 양기(楊起) |
입향 시조 | 양조수(楊照洙) |
[정의]
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조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청주 양씨(淸州楊氏)의 시조인 양기(楊起)는 원나라 사람으로, 중서성 정승의 자리에 있을 때 고려 공민왕의 비인 노국 대장 공주를 따라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양기는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 많은 외교적 공헌을 하여 삼한창국공신(三韓昌國功臣)으로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졌고, 청주(淸州)를 관적으로 하사받았다. 이에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삼았다. 서원백파·정승공파·전서공파·서평군파·밀성군파·당악군파로 나뉘며, 주로 서평군파 후손들이 포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입향 경위]
청주 양씨의 포천 입향 시기는 조선 초기인 것으로 말해진다. 포천 지역에 세거하던 청주 양씨 중 군내면 일대에 세거하던 가계는 16세기 초반 경 당시 안변 부사였던 양조수(楊照洙)가 관직을 사임하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현황]
1934년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신북면 기지리에 24가구, 영중면 금주리에 2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후 1953년에 간행된 『경기 도지』에서는 군내면 하성북리에 34가구, 내촌면 궁현리에 20가구, 신북면 기지리에 22가구, 일동면 길명리에 38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동면 길명리는 양천진(楊天震)의 3남인 양제달(楊悌達) 후손들이, 신북면 기지리와 영중면 금주리에는 양천진의 5남인 양신달(楊信達)의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양만고와 양사언의 묘, 양사언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포천시 향토 유적 32호 길명사(吉明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