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9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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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노현 |
당시에 소년 구보의 집 주변에는 여전히 집이 몇 채 없었다. 대신 갈대처럼 우거진, 1미터 이상 되는 풀들이 사방팔방에 자라고 있었다. 풀밭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우거진 풀들도 장마철이 되면 빗물에 다 씻겨 내렸다. 상대원3동은 산을 깎아 잡은 터였다. 그래서 장마철이면 늘상 일이 터졌다.
“상대원3동 모든 일대에 산을 다 깎아놓았기 때문에, 장마가 한번 지면은 1미터 이상 되는 개울 같은 게 생겨지고 그랬어요. 막 흙이 다 깎어져 내려가서요. 장마가 이렇게 되면은 뭐 100미리 200미리 어쩔 땐 500미리씩 오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상태에서 그 흙이 떠내려가서 깎아지면은 1미터, 1미터 50정도 되는 웅덩이들이 많이 파여졌는데,”
장마가 그렇게 무섭게 휩쓸고 가도 아이들은 새로 생긴 웅덩이를 놀이터 삼아 자랐다. 집이 쓸려 내려가거나 천막이 쓸려 내려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금 기억에는 없지만 혹시 그런 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도 아이들은 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생명력 질긴 질경이처럼 아이들이 자라났다. 소년 구보도 그곳에서 청년이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년이 되고서도 한동안 할 일이 없으면 그 주변을 배회했다.
“그런 곳에서 많이 놀았는데 그 웅덩이에다가 땅을 파서 굴을 파서 사람이 대여섯 명 정도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그럴 정도로 이렇게 했는데, 한번은 굴을 사방팔방에 애들이 심심하고 그러니까 굴을 파는 재미에 너도 나도 판 그런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우리 또래 형뻘 되는 형이 그 굴을 파다가 굴에 치어서 죽은, 무너져 죽은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깊이가 1미터에서 2미터 정도까지 파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한 사람 죽음으로 인해서 그런 거 못하게 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특별히 놀이터랄 것이 없는 동네 아이들은 그런 곳에서 그렇게 놀았다. 요즘처럼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독서실 같은 것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다 큰 아이들은 모여서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