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 단서암(丹書岩)에 있었던 매향비.

[개설]

매향(埋香)은 미륵불(彌勒佛)의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매우 귀한 향·약재(香·藥材)인 침향(沈香)을 마련하기 위하여 향목(香木)이나 송목(松木)·진목(眞木)·상목(橡木) 등을 갯벌에 묻는 의식이며, 침향한 향을 매개로 장래에 하생(下生)할 미륵불을 만나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행위이다.

연해지방민들은 매향의식을 통하여 구세(救世)·기복(祈福)을 발원하여 현실의 위기와 사회적 불만 등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유대 강화를 기원하였다. 즉, 현재의 인간들이 노력하여 미래에 개인적으로는 구원을 받고, 그 공덕이 국왕과 국가·국민에게까지 미쳐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이상사회가 오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매향을 한 후에 그 사실을 암각이나 비의 형태로 새겨 증거로 표시해 둔다.

정부와 지배층은 하층민들이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매향을 통해 사회변혁을 표방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묵인하였다. 그리고 하층민들은 매향처 곧 미륵불의 하생처를 자신들의 거주지로 택하여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고, 지역불교화 되어 갔으며, 그러한 현세지향적 성격 때문에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

매향 사례는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리의 정원 2년명(貞元2年銘)(786년, 원성왕 2) 석비(石碑)가 매향비라는 견해가 있어 신라하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며, 전라남도 신안군 팔흠도(八歆島) 매향비는 1002년(목종 2)의 것이나, 대부분의 매향비는 왜구가 출몰하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위치]

매향은 입지조건상 산곡수(山谷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해안가 내만첨입부(內灣添入部)가 최적지이다. 이 매향비도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의 남쪽 호반에 있었다 하는데, 단서암(丹書岩) 위에 세웠다고 전한다.

[형태]

비의 크기는 높이 60㎝, 가로 30㎝, 세로 23㎝ 정도이고, 전·후·좌·우 4면 총 40행 369자에 달하는 글자를 새겼으며, 글자의 크기는 2~3㎝이다. 비문은 해서체(楷書體)로, 거의 전문이 판독된다. 매향의 주관자 직명, 매향유래, 매향처와 수량, 시납전답(施納田畓)의 양과 위치를 상세히 밝혀 매향비의 한 전형이 된다.

[금석문]

삼일포 매향비는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 김천호(金天皓) 등 강릉 부근의 지방관들이 주동이 되어 위로는 흡곡에서 아래로는 울진, 평해에 이르기까지 동해안의 9개 지역에 매향한 사실을 적은 것이다. 지방관들이 관할지역인 동해안 곳곳에 매향한 것은 불사(佛事)를 통하여 현실적으로 지역 안보와 민의 안집(安集)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낙선존비(樂善尊卑)’라 지칭된 구성원들이 참여하였고, 『동국여지승람』 고성군(高城郡) 고적조(古蹟條)에는 강릉도존무사 김천호와 함께 산승(山僧)인 지여(志如)도 매향의식에 주도적인 인물로 나오므로 광범위한 신분계층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왕에 대한 축수(祝壽)와 국태민안(國泰民安)도 기원하였는데, 이 표현이 상투적인 문구일 수도 있으나, 국태민안을 위한 국왕의 역할을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 앞면에는 “고려국 강릉도 존무사 김천호, 강릉부사 박홍수, 판관 김광보, 양주부사 박전, 등주부사 정연, 통주부사 김용경, 흡곡현령 성을신, 간성현령 변유, 삼척현위 조신주, 울진현령 권분, 평해감무 박춘 등(高麗國 江陵道 存撫使 金天皓, 江陵府使 朴洪秀, 判官 金光寶, 襄州副使 朴琠, 登州副使 鄭椽, 通州副使 金用卿, 歙谷縣令 成乙臣, 杆城縣令 邊裕, 三陟縣尉 趙臣柱, 蔚珍縣令 權忿, 平海監務 朴椿 等)은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착한 일을 즐기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미륵보살 앞에 맹세·기원하면서 향나무 1500조(條)를 비 뒷면에 적은 개수대로 각 포구에 묻고 용화회주(龍華會主)이신 미륵(彌勒)이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이 하생할 때 우리들도 함께 태어나 용화회(龍華會)에 참석하여 삼보(三寶)를 공양(供養) 드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발원(發願)하면서 “1309년 8월에 삼가 조성한다”라고 되어 있다.

비 뒷면에는 “평해 해안치(海岸峙) 동구(洞口)에 100조, 삼척(三陟) 맹방촌(孟芳村) 물가에 150조, 울진(蔚珍) 두정(豆汀)에 200조, 양주(襄州) 덕산망(德山望)에 100조, 강릉 정동촌(正東村) 물가에 310조, 동산현(洞山縣) 문사정(文泗汀)에 200조, 간성(杆城) 공수진(公須津)에 110조, 흡곡(歙谷) 단말을리(短末乙里)에 210조, 압융현(押戎縣) 학포구(鶴浦口)에 120조, 모두 1500조를 묻었다”고 하였다.

비 좌측면에는 "중국 원나라 무종황제(武宗皇帝)와 황후(皇后), 고려 충선왕과 왕비의 행복과 수명이 오래 지속되기를 미륵불 앞에서 기원하고 장등보(長燈寶)에 은(銀) 1근(斤)씩을 거두어 고성(高城)의 우두머리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비 우측면에는 미륵보살 공양의 보(寶) 운영을 위하여 토지를 매입하자 양주부사 박전은 진답 2결(陳沓二結), 통주부사 김용경은 진답 2결(陳沓二結)과 진전 2결(陳田二結)을 시납(施納)하였다는 내용이다.

[현황]

고성 삼일포 매향비는 현재 비석은 없어지고 비문의 탁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매향비와 근접한 곳에 미륵불이 모셔졌던 사지(寺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미륵불은 석감내(石龕內)에 있으며, 매향비문중에도 미륵전장등보(彌勒前長燈寶)와 미륵사답(彌勒寺沓)이라는 구절로 보아 매향신앙과 연결되는 미륵불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고성 삼일포의 매향사례는 지방관이 주도하였고, 관할 지역의 지방관 전체가 참여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매향의 형태는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민중적 발원형태로 전환되는데, 매향주도집단의 변모는 여말선초 향도(香徒)의 성격변화와 유사하므로 향촌공동체 조직의 기능과 역할의 변모를 추적하는 단서가 된다.